ADVERTISEMENT

“재료 고유의 맛에 어울리는 양념 쓰는 게 셰프 역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사막 위의 도박도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는 초특급 호텔이 40여 개나 밀집해 있다. 이 호텔에는 수백 개의 고급레스토랑이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맛의 향연’을 펼친다. 그 중에서 한국인이 총주방장으로 있는 레스토랑은 단 한 곳뿐이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과 야외분수 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의 일식당 옐로우테일(방어라는 뜻)의 아키라 백(한국명 백승욱·37)이 주인공이다. 270석 규모의 엘로테일은 저녁에만 문을 열지만 연매출액이 1400만 달러(약 150억원)를 넘는다. 그는 ‘스시 세계화’로 유명한 일식 명장 마쓰히사 노부의 수제자다. 미국 최고 요리사 중 한 명이 된 그를 최근 벨라지오 호텔 옐로테일 레스토랑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키라 백이 총주방장으로 일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호텔의 일식당 옐로우테일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영사 제공]

-당신의 음식철학은 뭔가.

“간단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이루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 철학을 추구하나.

“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신선한 재료를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조리를 가볍게 하려고 애쓴다.”

-어떻게 미국인 입맛을 사로잡았나.

“맛에는 국경도 인종도 없다. 내 요리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은 나를 일식 셰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요리에 한국 고추장을 많이 사용하는데 일본 기자들이 배경을 궁금해 하더라. 재료 고유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어울리는 양념을 쓰는 게 셰프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명이 일본식인데 왜 그런 이름을 쓰나.

“종종 재일동포나 일본계로 오해를 받는다. 한국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했는데 실력이 좋아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가려고 했다. 그때 아버지의 일본인 사업파트너가 내게 아키라라는 예명을 붙여줬다. 미국에 이민오면서 야구 유학은 무산됐고 미국 친구들은 승욱이란 한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생’으로 불렸다. 일식 요리사로 활동하면서 아키라라는 예명을 쓰게 됐다.”

-어떻게 요리에 입문했나.

“‘겨울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살았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스노보드팀 선수였고 프로 선수로 활동하면서 파이프 점프 부문 세계 5위에 입상했다. MTV 등에 출연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다 발목 골절을 심하게 당해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 그래서 요리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의외의 변신인데, 원래 요리를 좋아했나.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일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부상을 당한 뒤 주방에서 일하려고 한 일식당을 찾아갔는데 주인이 요리를 배우고 싶으면 삭발을 하고 오라고 했다. 고심 끝에 머리를 밀고 요리에 입문해 지금까지 왔다.”

-노부의 제자가 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사실 쉽지 않았다. 노부는 인간적으로는 자상하지만 요리는 완벽주의자다. 음식을 대충 만드는 걸 가장 싫어한다. 매사에 성실하게 일하는 나를 눈여겨본 것 같다. 스승이 비일본계에다 경력도 짧았던 나를 자신이 운영하는 ‘마쓰히사 아스펜 식당’의 수석 주방장으로 임명했을 땐 정말 놀랐다.” 

-단골손님으로 누가 있나.

“패리스 힐턴, 머라이어 캐리, 뉴키즈 온더 블록, 저스틴 롱, 찰리 신 등 할리우드 스타나 팝 가수들이 자주 온다.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정·재계 거물들도 찾는다.”

-한국 군복바지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스노보드 탈 때 종종 입었는데 셰프로 일하면서도 내 스타일과 맞는 것 같다. 신발도 스노보드 회사에서 만들어 준 ‘아키라’ 브랜드를 신는다. 나만의 이미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한식 요리사들이 세계무대로 많이 나가게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미국에서 조리를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의 실력은 대단하다. 손 기술이나 응용력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 뛰어나다. 한데 인종차별과 언어장벽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스타 셰프가 나온다면 한식 세계화를 크게 앞당길 걸로 본다.”

-스타 셰프가 왜 중요한가.

“박찬호 선수의 영향으로 한국 야구선수들의 미국 진출이 급증하게 됐다. 한국 골프선수들이 LPGA 골프대회를 휩쓸게 된 것도 박세리 선수의 우승이 큰 역할을 했다는 보도를 봤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이를 알리는 데는 스타 셰프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고 본다.”

-미국 내에서 한식당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기보다 철저히 미국인을 겨냥해야 대중화될 수 있다고 본다. 저평가되고 있는 한식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식당은 깨끗하고 서비스가 좋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한식당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손님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다면 한식 고급화의 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신의 꿈은 뭔가.

“내 스승 노부가 그랬듯 내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열어 오너 셰프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 셰프로서 일식 본고장 도쿄에도 레스토랑을 내고 싶다.”

LA지사=최상태 기자

◆아키라 백=의류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를 다니던 14살 때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민했다. ‘마쓰히사 아스펜’ 레스토랑에서 비일본계로는 처음으로 수석 주방장을 지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파티를 성공적으로 열어 이름을 날렸다. 2008년 인기 TV 리얼리티 요리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해 유명 셰프 바비 플레이와 승부를 겨뤘다. 그의 요리 인생을 다룬 책 『라스베이거스 요리사 아키라 백』(김영사)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