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5전6기 홍상수 감독 ‘하하하’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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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이랄 게 있나요. 허허허…. 다음 영화 만드는데 (상이) 도움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죠 뭐.” 어조는 평소대로 느릿느릿했지만 얼굴은 마냥 웃고 있었다. 22일 오후 제63회 프랑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시상식이 열린 드뷔시 극장 앞에서 만난 홍상수(50)감독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열 번째 장편 ‘하하하’로 이 부문 최고상인 ‘주목할 만한 시선상(Prix Un Certain Regard)’을 받았다. 경쟁·비경쟁과 함께 공식 부문의 하나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는 경쟁 부문 못지 않게 쟁쟁한 작품들이 초청받는다.

우리나라가 이 부문에서 수상한 건 처음이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가 초청 받은지 26년 만의 일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하하하’의 얼굴들. 오른쪽부터 홍상수 감독, 배우 예지원·유준상·윤여정. [칸 AFP=연합뉴스]

‘하하하’는 영화감독 문경(김상경)과 선배 중식(유준상)이 술을 마시며 지난 여름 통영에서 벌어진 일을 얘기하는 내용이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에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장 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 올해 102세인 포르투갈 감독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의 ‘안젤리카의 이상한 사건’ 등 19편이 초청됐다.

‘5전6기’만의 희소식이었지만, 그는 배우들을 먼저 챙겼다. “기사에 제 소감보다 배우와 스태프 이름을 하나하나 다 넣어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배우들이 고마울 만도 했다. 13명의 제작진이 초저예산으로 만든 ‘하하하’에는 김상경·유준상·문소리·예지원·윤여정·김강우 등이 무료로 출연했다. 순전히 ‘홍상수’ 이름 하나 믿고서다.

“(상 받을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오후에 티셔츠 사러 갔는데 갑자기 ‘시상식에 참석해달라’고 조직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를 믿고 같이 해준 친구들에게 작은 보답이 됐으니 기쁩니다.” 남녀의 뻔뻔한 속내와 욕망을 한 꺼풀씩 벗기는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시나리오 없이 촬영 당일 아침 ‘쪽대본’을 나눠주기로 유명하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하하’가 끝난 후 정유미와 찍은 ‘옥희의 영화’는 스태프가 달랑 4명이다.

홍 감독의 감격은 이날 함께 시상식 단상에 올랐던 예지원이 대신 표현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 드레스를 적실 정도였다. 백지 두 장에 적어 달달 외웠던 프랑스어 수상 소감도 단상에 오르자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했다.

“도저히 안 울 수가 없는 날이네요.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촬영하면서 느낌은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이 천재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젠 연출이 어떤 경지에 올랐구나 싶었거든요. 완성된 작품을 보니 기대 이상이었죠.” 그는 홍 감독에 대해 “흔히 알려진 푼수나 4차원 이미지가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는 다른 얼굴을 끌어내준다. 내겐 감독이면서 친구이고 스승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은 다니엘 베가·디에고 베가(페루)의 ‘10월’이, 연기상은 아르헨티나 영화 ‘입술들’의 세 여배우 아델라 산체스·에바 비앙코·빅토리아 라포소가 공동으로 받았다.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칸(프랑스)=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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