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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면전까지 들먹이며 ‘보복’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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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국방위원회가 20일 천안함 침몰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전면전쟁’까지 거론한 성명을 내놓아 한반도 정세가 출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위는 지난 1월 우리 정부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에 반발해 거론한 ‘대남 보복 성전(聖戰)’ 카드도 재차 꺼내들었다. “역적패당과 그 추종자들의 본거지를 깨끗이 청산하겠다”며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위협을 제기한 것이다. 최고사령관을 겸한 김정일이 위원장으로 있는 기구의 공식 성명이란 점에서 ‘이명박(MB) 정부와의 한판 대결’이란 북한 최고지도부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도 이 대통령이 곧 “응분의 책임을 묻기 위한 단호한 (대북 제재) 조치를 곧 결심할 것”이라고 밝혀 남북관계는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북한 국방위 성명에서는 향후 닥칠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국면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동안 관영매체나 대남 전위기구를 내세웠지만 군부가 직접 김정일 체제에 대한 충성 의지를 과시하고 나선 측면도 있다. 특히 국방위가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검열단을 남조선 현지에 파견하겠다”고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천안호(북한은 천안호로 표기) 침몰을 우리와 연계되어 있다고 선포한 만큼 그에 대한 물증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이례적 입장 표명은 천안함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려는 고육책으로 읽혀진다는 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일이 이달 초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천안함 침몰과의 관련성을 직접 부인한 것으로까지 외부에 알려진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을 북한 군부가 내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검열단 파견 입장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정이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은 “정전(停戰) 관리를 위해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구성돼 있기 때문에 북측이 어떻게 연루됐는지 정전위에서 판단하고 이를 북측에 통보하고 조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박정이 단장이 답한 걸로 안다. 그걸로 갈음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군정위에서 정상 절차를 밟겠다고 하면 모르지만 일방적 ‘검열’ 주장에는 맞장구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조사의 객관성 보장’을 내세워 북한 요구를 수용하자는 주장도 내놓는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의 존엄 높은 검열단 앞에 물증을 내놓아야 한다”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덥석 호응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정일이 지휘하는 국방위 실무진이 천안함 조사 결과에 문제점은 없는지 남측 군부를 ‘검열’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의 발표 시작 30분 만인 오전 10시30분에 나온 북한 국방위 성명 곳곳에는 어뢰의 한글 표기 등 ‘결정적 증거’의 심각성을 사전 감지 못한 상황이 감지된다. “아무런 물증도 없이 천안호 침몰 사건을 우리와 억지 연계시킨다”는 대목 등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성명에서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시대다’며 증거를 요구했는데, 남한 TV를 통해 생생히 드러난 어뢰 잔해를 평양에서 지켜보며 한국과 국제사회의 과학기술 수준에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위 성명에는 “장교들은 살리고 사병 46명만 무참히 죽인 의도적 모략극”이란 대목이 포함되는 등 남한 내 일부 세력이 제기한 황당한 의혹에 기대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 국방위가 미리 성명을 만들며 어뢰 같은 결정적 증거가 드러난 상황까지 고려 못한 느낌”이라며 “검열단 파견 운운도 이런 맥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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