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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진씨, 사재 털어 엘비스 기념관 운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1977년 8월 16일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서울 종로에서 들었지요. 곧바로 팬클럽 회원들이 모였어요. 모두들 슬픔에 잠겨있는데 한 젊은 회원이 그러더군요. '차라리 잘 됐다. 할아버지 엘비스 프레슬리는 싫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그 사람을 한대 쥐어박았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팬으로서 솔직한 토로일 수도 있지요. 요즘도 엘비스 프레슬리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죽었기도 하고 살아있기도 하다고요. 제가 이 황량한 시골 벌판에 기념관을 만든 것은 그런 의미에서 그의 불멸을 믿기 때문이에요."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관 '팔로 댓 드림'.사재를 털어 기념관을 만들어 운영 중인 이종진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찾아 방황하는 어떤 꿈, 30대 이상이 잃어버리고 사는 옛날의 꿈을 이곳에서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념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팔로 댓 드림'은 62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제목이다.올해 나이가 몇살이냐는 질문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숨진 나이인 마흔두살 이후로는 나도 나이를 세지 않으려 한다"며 껄껄거리고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이씨에게 어쩌면 기념관 '팔로 댓 드림'은 꿈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9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독자들이 선정한 20세기의 인물 엘비스 프레슬리.록과 블루스를 하나로 묶어 로큰롤을 확고부동한 장르로 정립시킨 이 세기의 스타가 내년이면 사망 25주기를 맞는다.

음반 수익금 등으로 지난해에만 우리돈으로 4백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고,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애창하는 엘비스의 명곡을 담은 음반을 내놨으며, 지금도 엘비스가 살아있다는 '음모론'적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인쇄.휘장업을 하는 이씨가 엘비스 한국 팬클럽을 결성한 것은 20대 초반이던 70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엘비스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의 준비 작업끝에 지난해 여름 문을 연 기념관 '팔로 댓 드림'에 전시중인 수많은 엘비스 관련 자료들,엘비스의 LP 전부(72장)와 20여종의 최신 DVD, 크고 작은 밀랍 인형을 비롯한 기념품 등 셀 수 없이 많은 전시품은 그 세월의 흔적이다.

"70년대 초엔 동두천에서 주한 미군을 상대로 태권도를 가르쳤어요. 그때 수강료 대신 엘비스 LP를 받았지요."

누군가를 오랜 세월 좋아하면 점점 닮아가는 것일까. 헤어스타일, 그리고 무언가 분위기까지 엘비스를 닮은 그는 엘비스가 좋아하던 60, 70년대의 미국 자동차들도 수집, 수리해 기념관 앞에 전시중이다.

그의 기념관을 찾는 이들은 다양하다. 엘비스가 죽고 나서 태어난 신세대 팝팬부터 이씨 못지 않게 엘비스를 좋아하는 올드 팬까지. 그 가운데는 기념관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기념관에 들어가는 데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 관련 영화나 음반을 감상하려거든 도중에 나가지 말고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다음에 좋은 곡이 나오는데 그냥 나가는 걸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74년인가, 이런 저런 일이 겹치고 세상이 싫어져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한강을 찾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가만, 엘비스가 앞으로 새 노래를 낼지도 모르는데 그 노래를 못듣고 죽을 수는 없잖아'라는 생각이었죠. 꿈이란 그런 거 아닐까요." 과연 꿈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념관 031-948-3358

최재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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