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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안갔다" 방심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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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

지난 26일 오후 4시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4층 대회의실을 빠져나온 한국대표단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잔칫집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만면에 희색이다. 지난 3개월간 끌어오던 핵물질 실험사태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당초 우려했던 유엔 안보리행을 막고 의장성명만으로 끝났다. 한국의 한 당국자는 "이젠 다 끝났다. 운 나쁘게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다 끝난 걸까. 유감스럽게도 현지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멜리사 플레밍 IAEA 부대변인은 "보고서가 지적한 '심각한 우려사항'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추가 사찰과정에서 또 다른 심각한 보고 누락이 밝혀지면 차기 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이사회 개막 보고에서 "IAEA 전문가들이 평가할 때 핵 확산이 우려되거나 은폐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엔 이사회에 유의 보고할 것"이라고 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한국 당국이 억울해 할 만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실험에 관련된 핵물질도 극소량이고 대부분 20여년 전에 일어났던 사안이다. 이란.리비아.북한 등 핵 불량국가들의 명백한 핵무기 개발의도와는 다른 실험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시각은 싸늘하다. 물론 일부 외신과 특정 국가의 의혹 부풀리기가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초기 대응도 미숙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의 당국자들이 "아무 것도 아니다" "모르겠다" 는 엉터리 설명을 되풀이하면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사실 별것 아닌 것도 잘못 대응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주고 있다.

핵 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준이 무척 까다로워졌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우리는 떳떳하다''억울하다'는 감정적인 대응만으로 IAEA의 사찰단을 납득시킬 수 없다. IAEA는 12월 사찰단을 한국에 또 보내기로 하는 등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모든 문제가 깔끔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