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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안해룡 비디오 저널리스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잘 다니던 직장을 팽개치고 사진을 찍겠다고 시위 현장을 돌아다니던 때가 1980년대 말이었다. '프리랜서'기자란 개념도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시위 현장을 헤매다 한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를 만났다.

그를 통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충격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일깨움이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는 폭과 깊이에서 전문 학자와도 견줄 수 있었다.

자신이 광산노동자이면서 규슈 지역 광산노동자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우에노 히데노부(上野英信)의 작업에 관해 들었을 때는 전율이었다.

도요타자동차에 취업해 컨베이어 노동자로 생활하며 기록한 가마타 사토시(鎌田慧), 금권 정치의 정점에 서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등의 작업도 프리랜서 기자들이 성취한 보고물이었다. 이런 일본 프리랜서의 귀중한 작업들이 요사이 조금씩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어 반갑다.

가마타의 『자동차 절망공장』(우리일터기획)은 합리적 생산방식의 이면에 컨베이어의 노예로 변모해가는 노동자들의 인간 해체 과정을 파헤쳤다.

재일 조선인의 현재와 과거를 5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추적한 노무라 스스무(野村進)의 『일본, 일본인이 두려워한 독한 조센징 이야기』(일요신문사)도 '프리랜서 기자'의 역할을 일깨우게 한 작업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천재 기자라고 하는 다치바나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를 얼마 전 서점에서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은 홀로 거대하고 부패한 일본의 정치 권력과 일대 전쟁을 당당하게 치러낸 다치바나의 독서론이자 독서술이다. 또 그의 취재를 위한 일종의 조사 방법론이기도 하다.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평전』(개정판,돌베개)은 이런 일본 프리랜서 기자들의 작업에 버금가는 빛나는 기록이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노동자 전태일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은 80년대 많은 젊은이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했던 의식화의 제1교재였다. 사회를 변화하게 한 프리랜서 기자들의 작업을 곱씹어본다. 연성화되는 우리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시대정신으로 다시금 무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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