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튀는’ 도시철도 북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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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일 부산도시철도 덕천역 북 카페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송봉근 기자]

19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덕천역 10번 출구 앞. 사방이 유리로 돼 있어 안이 훤히 보이는 23.37㎡(약 7평) 공간 안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소나무로 만든 사각형 책꽂이 53개에는 1000여 권의 책이 꽂혀 있다. 아무렇게 걸려 있는 것 같지만 질서있게 보이는 책꽂이는 ‘기억집합체’라는 설치 미술작품이다. 책꽂이가 없는 벽에는 김은곤 화백의 풀 그림 5점이 걸려 있다. 부산문화재단과 부경대가 운영을 맡아 이날 문을 연 덕천역 북 카페 ‘아트 폼’(Art-form)의 모습이다.

부산도시철도에 설치되는 북 카페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독서토론회, 작은 음악회, 전시회,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복합 예술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북 카페 내부공사도 설치미술가에게 맡겨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벽은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번갈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덕천역 북 카페를 제작한 설치미술가 김정민(28)씨는 “소나무로 만든 책꽂이에 드러난 나무 나이테는 기억과 흔적을 가진 집합체를 의미하고 시민들은 ‘기억 집합체’인 책을 뽑아 본다는 개념으로 만든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부산 도시철도에 북 카페가 등장한 것은 1999년. 1호선 양정역 9.9㎡(약 3평) 면적에 책 700여 권을 비치한 게 처음이다. 이어 전포역에 2호점이 들어섰다. 부산교통공사와 시립부전도서관이 함께 운영하는 전포역 북 카페에서는 2주간 책 3권을 빌릴 수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시청역 북 카페는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15㎡(약 4.5평)의 북 카페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찾는 명소다. 이곳에서는 영광도서 직원이 한명 근무하고 있어 책을 주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지난해까지 도시철도에 들어서는 북 카페는 승객들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도서관 기능에 그쳤었다. 그러나 덕천역 북 카페를 시작으로 앞으로 부산도시철도에 설치되는 북 카페는 작은 문화·예술공간이 된다.

다음달 1·3호선이 만나는 연산동역에 들어설 북 카페는 준비단계부터 부산 예술인들이 참가한다. 연산동역 북 카페는 안창 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오픈스페이스 배(대표 서상호)의 작품 ‘비온 후’로 꾸민다. 앞으로 2·3호선이 만나는 부산대역, 2호선 경성대역과 동의대 역에도 이러한 개념의 북 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 문화재단 박소윤 문예진흥부장은 “공공미술 작품 성격의 북 카페는 선진국 도시철도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며 “앞으로 도시철도 북 카페가 생활속 작은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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