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닛폰 리포트] 일본의 중국 손님 모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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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마, 셰셰….”

지난 15일 대형 전자상가가 들어서 있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상점 곳곳에서 중국어가 흘러나온다. 주말 쇼핑여행에 나선 중국인 관광객들, 싹쓸이라도 할 요량으로 상점을 돌아다닌다. ‘코끼리표(象印·조지루시)’ 전기밥솥을 1인당 10여 개씩 사들고 낑낑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도쿄 번화가 긴자(銀座)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날 오후 마쓰야(松屋)백화점 내 시세이도 점포에선 중국인 일행이 화장품을 무더기로 사들였다. 근처 루이뷔통 점포에서 20여만 엔짜리 가방을 사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고가품이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요즘 일본 열도, 중국 손님을 맞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정부는 비자 발급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18일 중국인 개인 관광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해외여행 붐이 일어난 중국에서 관광객을 유치해 침체에 빠진 일본의 내수경기를 띄우려는 의도다.

구매력 있는 중국인은 누구든 대환영이다. 앞으로 관광비자를 받을 수 있는 중국인은 ▶대형 신용카드회사가 발급한 카드 소지자 ▶연봉 6만 위안(약 1000만원) 이상의 근로자 ▶관공서 또는 대기업 직원이다. 이 기준에 따라 비자 발급 대상자는 현재 160만 명에서 단번에 1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이로써 중국인은 5년 내 한국인을 제치고 일본 최대 방문객이 된다. 이들이 가져올 경제효과는 연간 4000억 엔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지난해 7월부터 중국인에게 개인 관광비자를 발급했지만 실적이 저조했다. 연봉 25만 위안 이상으로 소득 요건을 너무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관광·온천·소매업자들은 이를 완화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실리를 따져 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낮춘 것이다. 중국인은 가난하고 무질서하다, 이게 일본인의 시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마디로 상전벽해다.

올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일본은 자존심을 접고 중국인을 최고의 고객으로 모실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어디서든 중국의 카드로 결제할 수 있고, 호텔과 상점에선 중국인 직원이 응대하고, 거리엔 중국어 안내문이 나붙어 있다. 중국의 위상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의 실용주의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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