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가 동결 의미] 쌀 정책 용두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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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수매가 동결 방안은 정치 논리에 밀린 것이므로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 쌀 시장이 개방되면 농민 피해가 더욱 클 것이다. 농민을 도와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돕는 길인지를 찾아야 한다."

내년도 추곡 수매가 4~5% 인하를 건의한 양곡유통위원회의 위원인 강광파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상임이사는 정부의 수매가 동결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 거꾸로 가는 쌀 정책=국내 쌀 수매가는 미국의 5.8배, 중국의 6.1배, 태국의 9.1배나 된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이후 일본은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해 쌀값을 현실화한 데 비해 한국은 세차례 동결한 것을 빼곤 계속 올려온 결과다.

전문가들은 2년 남은 쌀 개방 재협상 이전에 쌀값을 내려 국내외 가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양부 전 청와대 농림해양수석은 "국회 동의 과정에서 또 올라갈 가능성이 큰데 정부안이 동결에 그친 것은 후퇴라고 생각한다"며 "직불제 보조금을 주면서 수매가를 안내린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 당정 협의에서 동결로 선회=농림부는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인하안을 검토했다. 내년 직불제 보조금(㏊당 40만~50만원)이 국회에서 확정되면 2.2% 정도의 쌀값 상승 효과가 있으므로 조금 내리더라도 농민에게 피해가 없다는 논리까지 개발했다.

김동태(金東泰)농림부 장관은 "솔직히 2% 정도 내려 농민들에게 시그널(신호)을 주려고 했는데 소득 보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인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농림부의 인하 방침은 정치권 및 청와대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희석된 것으로 알려졌다.

◇ 아무도 만족 못시킨 정부안=수매가 인하와 함께 양곡 정책의 대전환을 건의한 양곡유통위원들은 정부 결정에 허탈해했다. 양곡유통위원인 사공용 서강대 교수는 "정부 수매가로 가격을 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쌀 재고가 많아지면 시장 기능이 망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매가 인상을 요구해 온 농민단체도 이번 결정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내년 예상 물가 상승률에 맞춰 3% 정도 수매가를 올려야 하고 UR 협정에 따라 매년 7백50억원씩 줄어드는 정부 가격 보조금만큼 소득 보조로 돌려 내년 직불제 보조금을 ㏊당 60만원은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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