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 - 소설가 김영하, 국가를 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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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는 14일 파주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나눈 대담 도중 장르적 관습을 파괴하고, 매우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구현했다는 점 등에서 숱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단, 미국에 사는 한국 남성이 바람둥이라는 주노 디아스의 말에 김영하씨가 “공부벌레로 알고 있다”며 맞섰다. 대담 전문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에,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도 실린다. [조용철 기자]

주노 디아스(42)는 첫 장편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200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도미니카계 미국인인 그가 미국 문단 중심에 선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소설은 도미니카 독재에 의해 철저히 파멸된 한 가족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소설가 김영하(42)씨는 올 9월 『빛의 제국』을 미국에서 출간한다. 잊혀진 고정간첩으로 안락하게 지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북으로 돌아오라는 지령을 받으면서 혼돈에 빠지는 이야기다. 한국문학번역원이 마련한 ‘세계작가축제’ 참석차 방한한 주노 디아스가 김영하씨와 만나 국가와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노 디아스는 김영하의 작품 영역본을 출간에 앞서 미리 읽었다.

▶주노 디아스=한국인들이 항상 북한에 대해 괴로워하듯, 요즘 미국인들은 마치 한국인라도 된 듯 북한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빛의 제국』이 출간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흥미롭네요. 많은 미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점에 놀랄 겁니다. 미국인에게 북한이란 핵무기, 로봇으로만 이해되거든요. 개념을 뒤집어 엎는 반역적 작품이 될 거예요.

▶김영하=북한 사람도 연애를 하고, 아들이랑 스케이트도 타죠. 그러나 국가는 늘 불확실한 명령을 내려 개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요. 『빛의 제국』은 개인의 운명이 국가에 의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추적하는 소설인데요. 저는 최근 제 글이 교과서에 실리는 문제 때문에 다시금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국가가 교육과정을 주도하고 교과서를 편찬해서 그걸로 시험 보는 과정에 제 스스로 편입되는 걸 반대했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리는 걸 거부했죠. 작가와 문학은 나쁜 국가뿐 아니라 좋은 국가, 잘 관리되는 국가라 할지라도 늘 그것에 대해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아웃사이더로서의 자기 위치를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디아스=저는 정당과 관련된 모든 정치운동은 거부합니다. 대통령이나 정당 따위는 예술가에겐 뭣 같은 거거든요.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는 걸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김=한국의 저작권법에서 작가는 거부할 권리가 없어요. 출판사가 나중엔 보상하면 끝이죠. 소설의 앞과 뒤를 잘라서 갖다 써버리는데, 아주 끔찍해요.

▶디아스=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김=어르신들은 저를 비난하죠. 교과서에 실리면 영광 아니냐, 너도 국정교과서로 공부하지 않았냐, 그런데 왜 이기적으로 구느냐고요. 하지만 젊은층은 저를 지지해요.

▶디아스=국가는 예술을 하나의 ‘일’로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죠. 저도 ‘뉴요커’에 칼럼을 쓰면 매우 화난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항의 메일을 받아요. 도미니카를 배신하고 팔아 넘겼다는 비난까지 들었답니다. 절대 미국 앞에서 도미니카가 가난하다거나 추하다거나 나쁘다는 걸 보여줘선 안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일종의 도미니카 관광 안내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김=작은 나라의 작가란 원하든 원치 않든, 국가대표처럼 여겨지죠. 밀란 쿤데라도 “소국의 작가는 작가 자신이 되지 못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제약을 받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디아스=도미니카는 31년간 독재치하에 있었어요. 독재는 사람의 사랑까지도 뒤틀리게 하죠. 저는 작가로서 국가가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게 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독재에 눈멀게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해요. 독재는 아웃사이더를 매우 싫어하고, 사생활도 배척하죠. 그런 국가에선 누군가가 “나는 도미니카를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하면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감수할 수 있게 돼요. 독재자는 국가의 상징 인물이 되고 독재자에 위협을 가하는 건 곧 국가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는 거죠.

▶김=당신의 소설에서 재미있는 건 그것에 대해 공격하기보다 독재자가 추구하는 스토리들을 우습게 만드는 거예요. 독재자가 진지하고 엄숙하게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과장되고 우습게 만듦으로써 그에 대해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하죠.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디아스=소수자의 이야기는 가십이 아니고선 살아남기 힘들죠. 제 글이 살아남게 하려고 일부러 희화화한 면이 있고, 등장인물들의 사실적인 생존 방식을 이야기하는 측면도 있어요. 독재치하에서 “너 머리 크다” 같은 농담을 하며 생존해가는 거죠. 저는 가족들에게도 아직 인정을 못 받거든요. 퓰리처상도 그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미국에선 돈이 최고니까 책을 몇 권 냈더라도 안정적인 회계사 같은 직업을 갖길 바라죠. 제 여동생이 변호사라 돈을 잘 버는데, 우리 가족의 자랑이에요. 식구들은 저한테 늘 “너도 어릴 때 똑똑했는데”라고 해요.

정리=이경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주노 디아스=1968년 도미니카공화국 출생. 코넬대 석사. 현 MIT 창작과 교수. 1996년 단편집 『Drown』으로 데뷔. 2008년 첫 장편 『Brief Wondrous Life of Oscar Wao』로 퓰리처상 수상.

◆김영하=1968년 경북 고령 출생. 연세대 경영학 석사. 1995년 ‘계간 리뷰’로 등단.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아랑은 왜』 『퀴즈쇼』,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오빠가 돌아왔다』 등. 황순원문학상·동인문학상·만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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