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으로 부드러운
가지를 드러내는 버드나무들이
바람의 방향 따라 흔들리는 걸
보며 나는 옥수수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마루를 닦기 시작한다
책들을 치우고 의자를 옮기고
쓰레기통을 비운 뒤 구석구석
물걸레질하다 보면 현관으로는
햇빛이 들어와 물살처럼 고이고
바람이 산 밑으로 쓸리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철새들이 말하며 가는 것을 본다
순간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오늘 같은 날은, 나를 상자 속에 가두어
두고 그리운 것들이 모두 집 밖에 있다.
-최하림 (1939~) '독신의 아침'
삶 속에서나 시 속에서나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는 시인 최하림, 그는 언제나 창밖을 내다보듯 건너다본다. 부드러운 손처럼 어깨 위에 와 얹히는 그의 시선이 낙엽 같다. 아무 말 없이 고요하니 더욱 잘 들여다보인다, 그의 단정한 독신이 산자락에 지어놓은 투명하고 적적한 집 한 채. 비등하는 욕망이 풍경 속에 녹는다.
김화영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