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작곡가들] MGR 박용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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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작곡을 마치 레고 게임처럼 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요. 새로운 멜로디와 리듬을 창조해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기존의 것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조각 맞추기를 하는 겁니다. 교묘한 표절이 횡행하는 것도 그런 풍조 때문입니다."

예명 MGR로 알려진 작곡가 박용찬씨는 최근 몇년 사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번지고 있는 짜깁기식 음악 만들기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그는 "PC를 이용한 작곡이 널리 퍼진 때문인지 요즘은 막 작곡을 시작한 나이 어린 작곡가들까지 블록쌓기식 음악 만들기를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올해 서른두살.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룹사운드 터보를 만들어 기타 연주자로 활약했다. 그때 같이 그룹 활동을 했던 이가 고등학교 동기인 가수 윤종신씨다. 1989년 고려대 산림자원학과에 입학한 뒤 가수 조성모씨를 키운 것으로 유명한 제작자 김광수씨를 만나 4인조 록그룹 뮤턴트 결성을 주도했지만 일찍 활동을 접었다.

대학 3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해 군악대에 들어갔는데 그때 편곡과 작곡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제대 후 윤종신씨의 독집 앨범 제작에 참여해 '내사랑 못난이''부디'등의 노래를 편곡했다.

예명 MGR은 이 시절 그가 준비하던 프로젝트 그룹(Modernized Groove Revolution)의 약자다. 윤씨와는 지금도 같은 사무실을 쓸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정석원씨 등과 함께 했던 그룹 015B의 마지막 앨범에는 객원 싱어로 참여했었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대부분의 전문 작곡가들이 작사는 하지 않는 것과 달리 노랫말도 직접 쓰는 그가 작곡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노래는 98년 신인 여가수 이소은이 부른 '작별'이다. 이어 이수영의 '아이 빌리브'로 정상을 차지하는 감격을 처음 누렸다.

역시 신인이었던 이수영의 음색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동양적 색깔의 노래 '아이 빌리브'는 이수영과 MGR을 동시에 정상의 자리에 올려놨고 2집의 '스치듯 안녕''네버 어게인', 베스트 앨범의 신곡 '그녀에게 감사해'도 그가 만들었다. 이승환의 '그대는 모릅니다''루머'도 MGR의 곡이다.

그는 "가요계에 'MGR풍'으로 알려진 '아이 빌리브'류의 동양적 사운드는 편곡자 황성제씨와 함께 작업할 때만 나오는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북구 유럽, 혹은 70년대 팝음악적인 곡을 주로 만든다는 그는 다음달 선보일 이수영 3집에서는 그런 특징이 부각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재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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