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음 산책

“그래, 바로 그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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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들어올 때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질문부터 쏟아지죠. “교무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어쩌면 그런 사람이 다 있어요?” 질문으로 시작된 내용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하소연입니다. “회사에 무슨 일만 있으면 무조건 책임회피부터 하면서 자기 실속만 챙겨요. 연봉은 연봉대로 올리고, 회사 경비로 고급 차를 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상관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회사 일을 아무한테나 말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속으로만 끙끙대며 참아왔는데, 오늘은 속 시원히 말이라도 하고 싶다면서 말이죠.

[그림=김회룡 기자]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말을 하면서 마음이 풀리고 냉정을 찾으니까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거죠. 일단은 자기 혼자만 그런 애로를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죠. 더 심한 경우에 비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그뿐만 아니라 자기가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아가서 그분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는 데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죠. 타고난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성장과정상에 억압된 결핍감이 표출된 모습일 수도 있죠. 내면의 열등감이나 약한 존재감을 감추기 위해 외면의 연봉이나 고급 차에 집착하는지도 모를 일인 거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차라리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더 이상 화는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죠. “바로 그거예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속한 사회나 단체, 조직 내에서 이런 문제로 괴로운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희 선방에 온 손님들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학벌 타령에 시댁에만 가면 맘이 편치 않다는 며느리도 있고,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있었죠. 학부모 사회에서도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직장 동료나 상하관계에서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이런 어려움이 따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화가 날 일은 아니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내 권한 밖의 일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이 보이면 거슬리고 미운 마음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괜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내가 화가 나는 걸까요?

중국 돈오선을 개창한 육조혜능의 『육조단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밖으로 상(相)에 집착하면 안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밖으로 상을 떠나면 안으로 어지럽지 않다.” 밖으로 어떤 정해진 틀(잣대, 기준)을 가지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며 주장하고 집착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는 거죠.

결국, 안으로 내 마음이 어지럽거나 화가 난다면 밖으로 어떤 상(相)에 대해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성직자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 ‘시댁 식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 ‘상관은 이러~ 이러~해야 한다’ ‘남편은 이러~ 이러~해야 한다’ 등등. 어떤 고정관념이나 정해놓은 기준이 많을수록 삶이 고달파집니다. 기준이 많으니까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아지고 힘들어지는 거죠.

그러니 마음이 요란해지거나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밖으로 보이는 대상을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 안으로 내 마음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어느 상(相)에 걸려 있는지를 보는 거죠.

섭섭한 마음이 나면 그 마음이 나는 원인을 찾아보고 알아차려야죠. “그래, 그거야. 내 기대가 커서 그렇지 저 사람은 모르지.” 다른 사람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면 겉모습만 보지 말고 더 깊이 들여다봐야죠. “그래, 그거야. 저 사람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절실한 이유가 있겠지.” 때로는 내 감정의 문제는 아닌지 솔직하게 내 마음을 바라봐야죠. “그래, 바로 그거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데 저 사람은 하니까 화가 나는 거지. 나의 용기 부족이나 욕심이 문제지 저 사람 문제는 아니지.”

원불교 대종사님은 ‘세상에 두 가지 어리석은 사람’을 지적합니다. ‘자기 마음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쓰려는 사람’과 ‘자기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까지 간섭하다가 고통받는 사람’이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직이나 단체를 아끼는 마음에서, 또는 가슴이 뜨거워서 이런 우(愚)를 종종 범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문제는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평가하고 시비하는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대종사께선 “참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남의 시비를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의 시비를 논하기 전에, 내 마음이 걸려 있는 상(相)을 먼저 찾아보는 거죠. 상대의 어떤 모습을 놓치고 있는 건지, 나의 어떤 감정에 휩쓸린 건지, 어떤 고정관념에 걸려 있는지 찾아보는 거죠. 그렇게 걸려 있는 상(相)을 찾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시비가 멈추고 이해가 시작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 바로 그거야.” 요란함을 내려놓고 행복을 향해 가는 깨달음의 소리입니다.

글=김은종(법명 준영) 교무·청개구리선방
그림=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