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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한국주의'로 승화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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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몇 년 사이 한류(韓流)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의 대중문화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는 2000년 무렵에는 한류라는 이름까지 얻게 됐다고 한다. 중국의 한 신문에서 유래했다는 이 단어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쏠리는 중국 젊은 세대들의 양상을 일컫는 것으로서 지금은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퍼지고 있다.

우리 영화나 TV드라마가 동아시아에 수출돼 일정한 인기와 반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향유 욕구가 증대됐을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과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호감이 증대돼 제조업에서까지 실질적인 구매효과를 낳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나아가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나 전통.사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욕구로까지 이어져 소위 합한족(哈韓族)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어쩌면 매우 급작스럽게 벌어지고 있어 우리는 미처 진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일례로 일본에서 '겨울연가'라는 TV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중년의 아줌마들이 출연배우와 촬영장소를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과 문화 전반에 대해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현상 앞에서도 모두가 매우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보다 더 우리 것에 열광하는 한류 소비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우리 태도는 매우 기이한 데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 문화는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이 흐름에 대해 자신 있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세계에 내놓고 있는가. 어쩌면 불안과 조심스러움 속에 숨어 여전히 밖으로 나오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나는 그런 소심성의 일단을 한류라는 말에서 본다. 이 용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을 우리가 가져다 쓰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스스로 명명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그 명칭이란 애초에 외부인의 시각에서 주어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나의 명칭이란 바로 '차이'를 지칭한다. 한국적인 것은 중국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것이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그 한국의, 한국적인 것이 그 나라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여와 차이는 지금 제조업 상품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넘어 김치로 대표되는 음식문화로, 드라마나 영화로 확산될 때 그것은 한국의 심성.정서.미감.사상의 일단을 담게 된다. 즉 그 모든 것들은 한국적인 그 본연의 어떤 것과 뿌리가 닿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이는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일이 아니다. 설령 그들에게는 일시적인 유행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드높이고 자랑삼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의 번역을 두고 일어나는 혼란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영자 신문에 등장하는 용어를 보아도 'Korean boom' 'Korean current fever' 'Korean wave' 등등으로 한자어 '한류'의 자구 번역에 연연하고 있으며 그 뜻은 하나같이 이 문화 현상을 한시적인 것으로 왜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안 될 말이다. 한류는 한국적인 것 전체의 흐름이며 확산이며 심화다. 한국적인 것 전체의 소비이며 향유이며 이해다. 또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러니 한류는 21세기 벽두에 세계무대에 제 모습과 가치를 드러낸 한국문화와 사상.한국인성.한국주의(Koreanism)의 첫 외침인 것이다.

김진하 양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