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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표기, 감정보다 논리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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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동해 문제를 거론할 때, 일본은 항상 우리가 근거 없는 정치적 동기와 국수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참석한 국제수로기구회의에서 '일본해'로 인정된 것도 18세기 이후 정립된 서양인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감정에 치우쳐 국제사회에 괜한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한다.

근거 없는 것은 일본이지만, 우리가 이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꼴이 될 것이다. 그들이 토론의 장에는 나오지 않고 세계적인 지명 전문가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지급하고 그들 편으로 끌어가려는 물밑작업에만 주력한다 해도, 우리는 모든 감정과 정치적 이해를 배제하고 증명된 사실과 객관적 논리로 국제사회를 설득시켜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다 이름의 국제적 표준화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동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주제로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세미나는 이런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유엔지명위원회와 세계지리학연합 등을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지명학.지리학 분야 전문가들은 지명 표기의 원칙과 사례에 입각해 우리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었다.

우선 주목할 것은 지명(바다 이름 포함)이 역사적 합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지도를 보면, 동해는 '동양해' '한국해' '일본해'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다. 통계를 내보면 '한국해'가 많이 사용되고 있고, '일본해' 표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일본이 주장하는 18세기 이후의 지도에서도 3분의 2 이상이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그러나 일본도 '일본해' 사용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것은 통계 용어로 '모집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계 각국에 소장돼 있는 무수히 많은 고지도 중에서 취향에 맞는 '표본'을 누가 많이 발굴해내느냐에 달려있는 일이므로 그리 객관적인 논리는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를 따진다면, 우리로서는 오히려 지도 자료만이 아니라 고문서.구전.전설 등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동등한 강도로 고려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더 중요한 논리는 국제적인 지명 표준화에 있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명학 교과서에 나오는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원칙이며, 유엔지명위원회의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동해'는 2000년 넘게 우리 민족이 사용한 이름이며, 일본인들이 '일본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강도 높게 인식하고 사용해 왔다. 역사책과 전설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심지어 대중가요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시상대에 올라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 듣는 애국가의 첫머리는 바로 우리의 역사와 함께한 '동해'로 시작한다. 동쪽인 태평양 연안에 대부분의 인구가 집중해 있는 일본에서 친숙한 삶의 공간으로서, 그리고 상징성 있는 대상으로서 서쪽에 있는'일본해'를 언급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왜 '한국해'가 아니라 '동해'냐 하는 질문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해'는 외국인이 만든 외래지명이며 '동해'는 우리 민족이 수천년간 사용해온 토착지명이다. 굳이 '동해'에 외래지명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바다일 뿐 아니라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를 '독일해''영국해''덴마크해'로 제각각 부르다가 유럽대륙의 북쪽에 있다는 의미로 '북해'로 통일해 부르기로 한 결정은 좋은 사례가 된다.

주성재 경희대 교수지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