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테러방지법 독소조항 없애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무차별 극단적으로 자행되는 최근의 국제테러는 가위 전쟁 수준이다.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9.11 동시다발 테러는 피해 규모나 충격 면에서 전쟁을 방불케 했고,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인데다 내년에 월드컵이라는 초대규모의 국제행사를 앞둔 시점이니 테러방지법 제정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가칭 테러방지법(안)을 마련,입법예고했다. 국가정보원에 '대(對)테러센터'라는 상설기구를 둬 테러에 관한 정보 수집.수사 등을 전담케 한다는 것이 골자다. 법안은 또 테러행위의 가중처벌은 물론 불고지죄 신설, 참고인 강제 구인, 구속기간 연장 등 각종 특례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모호한 규정이 많아 국정원의 권력남용.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수사권까지 갖는 것은 특정기관 공권력의 비대화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를 거치면서 행했던 전례로 보아 테러수사 지휘를 명분으로 다른 수사기관을 무력화할 우려 또한 있다.

이는 국정원의 자업자득이지만 그렇다고 유명무실한 법안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테러행위는 예방단계부터 오차없이 강력히 대응하고 다른 범죄보다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결국 강력하고 효율적인 법을 제정하되 공권력의 남용이나 악용 소지를 없애는 게 초점이다.

우선 대테러센터의 상설은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평상시 국정원의 대민(對民)수사권 강화는 정보기관 권한 축소라는 시대적 흐름과도 안 맞고, 검찰.경찰과의 마찰.혼선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대테러센터는 대규모 테러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물론이지만 월드컵과 같은 거국적 행사 전후나 확실한 징후가 있을 때 한시적으로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울러 테러에 대한 정의(定義)와 법 적용 대상 범죄를 분명히 규정해 남용 소지를 없애는 한편 각종 형법상 특례도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