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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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사무쌍(國士無雙).

평생을 통해 숙적이었던 김양이 장보고를 평한 국사무쌍이란 말은 나라 안에 둘도 없는 무사, 즉 천하제일의 인재라는 뜻이었다. 이는 진(晉)이 멸망하고 항우와 유방의 두 영웅이 천하의 자웅을 겨루던 때 천하의 명장 한신(韓信)을 두고 정승 소하(蕭何)가 평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한신은 항우를 섬겼으나 항우에게 크게 실망한 후에 유방의 군대에 몸을 의탁했던 것이다.

그 무렵 유방의 진영에서는 고향을 그리다 병사들이 도망치는 일이 빈번함에 따라 사기가 말이 아니었는데, 소하가 여러 번 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군량을 관리하는 치속도위(治粟都尉)정도에 머물러 있던 한신 역시 유방에게 싫증이 나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자 황급히 말에 올라 그 뒤를 쫓았다. 큰 싸움을 두고 한신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갑작스런 광경을 본 한 장수가 소하도 도망가는 줄 알고 유방에게 고했다. 믿었던 소하마저 도망을 쳤다는 보고를 들은 유방은 크게 노여워했다. 그런데 이틀 후 소하가 돌아오자 유방은 노한 얼굴로 고함쳤다.

"감히 내게서 도망을 치다니."

소하는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도망친 것이 아닙니다. 도망친 한신을 쫓아가서 다시 데리고 온 것뿐입니다."

여러 부장들이 도망쳐도 가만히 있던 소하가 이름도 없는 한신을 쫓아가 잡아오다니. 유방이 믿지 않자 소하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제까지 도망친 여러 장수들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읍니다만,한신은 실로 '국사무쌍'이라 할만한 인물로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전하께오서 이 파촉(巴蜀)의 땅만으로 만족하시겠다면 한신 같은 인물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얻고 싶으시다면 한신을 제쳐놓고는 군략을 도모할 인물이 없습니다."

한왕(韓王)보다는 천하를 제패하고 싶었던 유방은 소하의 말에 따라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이것이 기원전 206년의 일로서 그 뒤부터 한신은 과연 기대대로 화려한 전공을 세웠으며, 드디어 유방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양은 장보고를 한신과 같은 '국사무쌍'의 인물이라고 평한 후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나으리, 나으리께오서 지금 현재 이대로의 권세만으로 만족하시겠다면 장보고와 같은 인물은 필요 없으시나이다. 하오나 나으리께오서 언젠가 반드시 천하를 얻으려 하신다면 장보고를 제쳐놓고는 함께 도모할 인물은 하늘 아래 둘도 없나이다."

김양은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우징이 울그락 불그락 하였으나 아버지 김균정은 이를 모른 체하며 깊은 침묵에 잠겨있었다.

깊은 한밤이었으므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방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방안을 밝히는 타오르는 등심(燈心)소리뿐이었다. 오랜 침묵이 흐른 후 김균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위흔아, 마지막으로 세번째 질문을 하겠다. 이에 성실하게 대답하여 주기 바란다."

"물론이나이다, 나으리."

"네가 무진의 도독으로 가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너는 네 입으로 그것이 사사로운 개인의 영달 때문이 아니고 오직 나와 이곳에 앉아있는 우징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 하였는데 네가 무진의 도독으로 가는 것이 도대체 우리 부자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나으리."

김균정이 묻자 김양은 오랫동안 생각해 두었던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내려갔다.

"신이 무진의 도독으로 내려가려 하는 것은 바로 국사무쌍의 인물 장보고 때문이나이다. 장보고의 청해진 땅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무진뿐이나이다. 한 때 청해는 무진의 속령이어서 무진의 관할이었나이다. 마치 무진이 입술(脣)이라면 청해는 이(齒)와 같은 곳이나이다. 또한 무진이 광대뼈(輔)라면 청해는 아래턱뼈(車)와 같은 곳이나이다. 장보고를 살피고, 장보고와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곳 역시 무진밖에는 없을 것이나이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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