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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Ⅱ'전 관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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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기존의 한국 현대미술 비평은 그 시대 미술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미술사가 아니라 화단사,그것도 주류 중심의 패권주의 역사에 불과하다."

(오상길 한원미술관 관장.44)

서울 서초동 한원미술관(02-588-5642)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새로 쓰겠다는 야심찬 기획전이 지난 6일부터 '조용히'열리고 있다.

1960~70년대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미술운동을 재조명하는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Ⅱ'전이다.지난해의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Ⅰ-80년대 소그룹 운동의 비평적 재조명'에 이어 문예진흥원 우수기획전 공모에 선정된 기획이다. 3부로 나누어 열리는 이 기획전의 취지는 탈(脫)서구중심적 관점에서 한국미술사를 비판적으로 재조명하자는 것.

전시를 기획한 오관장은 당시 주역이었던 18명의 작가.평론가와 대담을 나누고 이를 비디오 자료로 만들었다.

4백여종의 자료를 정리한 뒤 9월에 두차례의 워크숍,10월엔 한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강태희(한국예술종합학교).김미경(강남대).송미숙(성신여대).윤진섭(호남대)교수가 참가했다. 1천2백쪽 분량의 자료집도 곧 출간한다. "역사의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다.

그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미술사적 인식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서구에서 미술양식의 변화는 전통에 대한 단절과 비판을 통한 역사적인 극복의 과정으로 풀이된다.

한국은 그같은 맥락 없이 그 결과로서의 미술양식만을 유행처럼 수용해왔다. 한국 현대미술사는 세계 미술사에서 한 페이지도 차지할 수 없는 변방의 역사일 뿐이다.'

이런 인식에 대해 오관장은 "서구중심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다. 하지만 문화는 서로 섞이게 마련이며 저마다의 가치는 고유하고 우열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 현대미술에 서구미술이 미친 영향의 성격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찾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예컨대 60~70년대 당시 서구 기하추상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추상화들은 화면을 딱딱한 직선으로 분할하고 평면적 색채로 덮었다. 하지만 그 공간개념과 색채는 주정적(主情的)이며 색동과 단청, 전통문양까지 포함돼있다. 그렇다면 이를 엉터리 모방이 아니라 문화적 혼성에 따른 새로운 미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자는 것이다."

지난 20일 시작된 기획전 제2부 '시대의식으로서의 오브제와 해프닝'(29일까지)과 제3부 '개념화와 비물질화(12월4~13일)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는 오브제와 해프닝이 재현회화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고 개념화도 그 자체를 추구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시대의식을 반영한 역사적 실천,사회적 발언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독자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미술은 절대적인 미의 구현이라는 종착점을 향한 것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유동적이고 과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작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소유하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글=조현욱.사진=변선구 기자

*** 오상길 관장은…

그는 스스로를 현대 미술문화의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수용자이며 작가이자 미술이론가이며 문화활동 기획자라고 소개한다. 이론에 해박한 데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모두 전투적이라 제도권의 보수적인 미술계 인사들에게 '기피인물 1호'로 꼽힌다.

홍익대 시간강사로서 "교수나 선배들의 아류가 되면 작가로서는 끝장이다" 등의 도발적인 강의로 유명하다.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현대미술에 관한 담론형성을 위해 웹에서 결성한 서울 현대미술연구소(http://www.icas.or.kr)에 소속돼 활동 중이다. 주류 화단의 이단아인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는 논평을 꺼리지만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있다.

1996~97년엔 미국 뉴욕의 PSI미술관이 세계 13개국에서 한명씩 초대하는 국제 스튜디오 작가로 선정돼 1년간 뉴욕에 거주하면서 활동했다. 당시 이례적으로 뉴욕 진출 당해연도에 화랑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달 개막된 호주의 국제 비디오 미술제인'MAAP 2001 EXECESS'축제에 이례적으로 비디오 작품 7편을 한꺼번에 초대받았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재학시절인 85년 메타복스라는 그룹을 결성, 당시 기성화단의 주류였던 단색조 평면회화 집단과 이에 도전하는 민중미술 세력간의 갈등을 지양, 극복하자는 탈모던 운동을 주도했다.

89년엔 그룹을 해체하고 후기미술작가협회를 창립,동료작가들과 이론강좌'북악청년 미술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한국 현대미술과 모더니즘''한국 현대미술과 포스트 모더니즘'등을 출간했다. 92년 한국 문예진흥원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연구', 93년 문화부의'세계미술대전 개최방안 연구'등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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