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익어서 시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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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김장철이 왔다. 배추를 소금에 절인 뒤 버무린 속을 넣고 장독 속에 두면 어느 사이엔가 맛있게 익는다.

이렇게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활동하며 복잡한 변화를 일으킨다. 갓 담근 김치는 당분.탄소화합물.유기산 등 미생물들이 번식하는 데 필요한 양분을 잔뜩 가진 '미생물들의 잔칫상'이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박완수 김치연구단장은 "그러면서도 김치는 채소를 썩게 하거나 병을 일으키는 등의 나쁜 미생물은 발붙이지 못하는 환경을 갖췄다"고 말한다. 부패균은 소금기 때문에 살지 못하고, 병원균은 고추에 포함된 각종 유기산 때문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치 속에서 처음에는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고춧가루의 당분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세포막이 두꺼운 배추 속의 당분은 이용하기 어렵지만, 고춧가루는 고추를 빻을 때 세포막 조직이 으깨져 당분을 쉽게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분해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나오며 김치 포기 속에 배어 있던 공기를 밀어낸다. 공기를 싫어하는 유산균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때부터 유산균들이 본격적으로 번식한다. 유산균의 번식이 바로 김치가 익는 본 과정이며, 유산균 숫자가 가장 많아졌을 때가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었을 시기다.

김치를 맛본 외국인들이 요구르트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하는 것은 김치나 요구르트나 맛을 내는 주 요인이 유산균이기 때문이다.

김치가 익은 지 오래 되면 유산균의 활동에 필요한 당분이 부족해 진다. 이렇게 되면 유산균 대신'산패균'이 활동하게 된다.

산패균들은 유산균이 만든 젖산을 이용해 번식하는 미생물로, 김치가 시어지게 만든다. 김치는 이렇게 김치를 익히는 미생물과 익은 뒤 시어지게 만드는 미생물이 다르다.

김치에도 국제 규격이 있다.지난 7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는 우리나라의 제안에 따라'배추를 절여 고춧가루.마늘.생강.파.무 등을 혼합해 젖산 발효가 이뤄지게 한 것으로, 산도는 1.0% 이하일 것'등을 김치의 규격으로 정했다.

이에 따르면 산도가 1.0%를 넘는, 팍 신 김치는 국제규격상 김치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참고로 한국인이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김치의 산도는 0.5~0.8%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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