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0.5평 너른 세상, 꿈이 있는 작은 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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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판대가 좁다고요? 온 세상을 다 봅니다." 서울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 김명자씨.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그곳과 세상을 잇는 통로는 반달 모양의 손바닥만한 구멍이거나 곰보처럼 구멍난 유리, 또는 희뿌연 아크릴 창이다. 이를 통해 꿈이 건네지고, 일상의 피로가 회복되며, 가로막힌 차단기가 올라간다. 가판대.복권판매소.구둣방.고속도로 톨게이트. 인파가 스쳐 흘러가는 도시에서 이들은 때로 섬이 되고, 때론 뗏목이 된다.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반평짜리 인생'이 있다. 옴짝달싹하기도 힘들어 몸은 답답하다. 하지만 삶까지 좁아터진 것은 아니다. 담배나 음료수를 사러 와서는 웬 수다를 그리도 늘어놓던지. 인간사 온갖 희로애락이 반평 안으로 흘러든다. 그들이 접하는 세상의 크기는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서 죽치는 인생과 견줄 게 아니다.

스쳐가는 다양한 군상을 대하다 보면 내미는 손만 봐도 성격을 알 만하다. 무심코 취하는 손놀림 하나에 됨됨이를 짐작한다. 구두를 보면 그가 살아온 역정쯤 가늠할 수 있다. 부스 치우고 돗자리 깔고 산통 놓아도 굶지는 않을 듯하다. 27년 경력의 구둣방 아줌마는 동네 상담사가 다 됐다. 김장철 택일에서 싸고 좋은 전기장판.이불 구입장소까지 모르는 게 없다.

1회용 고객만 있는 게 아니다. 단골도 제법 많다. 구입한 복권이 1등 당첨됐다고 사례하는 사람도 있다.

밖에서는 안 보이는, 부스 안쪽도 슬쩍 엿봤다. 세상에 반평이 어찌 그리 넓은 지. 웬만한 살림은 다 갖췄다. 가로.세로 1m 남짓한 복권 판매대 안에 TV.비디오.온풍기.커피포트.발 운동기구.도난 경보장치까지 있었다. 그러니 그보다 좀 넓은 가판대 안에는….

글=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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