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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교통사고까지 지휘 … 검찰 ‘수사권 독점’ 재고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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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3월 회사원 김모(29)씨는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 옆 자리에 있던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 몸싸움을 벌인 두 사람은 맞고소를 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사건 경위를 모두 진술했는데 검찰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이중 조사’로 불편을 겪는 국민이 적지 않다.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에서 다시 불러 조사하는 메커니즘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검찰 업무량도 폭주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형사부 검사 1인당 월평균 사건 처리 건수는 150여 건. 휴일까지 꼬박 일해도 하루에 5건 이상을 처리해야 한다.

가벼운 도로교통법 위반 같은 벌금 업무는 검사가 아닌 ‘검사 직무 대리’인 검찰 일반직원이 대부분 맡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의 수사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현행 체제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도 검찰이 필요 최소한의 경우에만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찰에 대한 마지막 견제책”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경찰대 이상안(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조직 내에 자리를 잡으면서 폭력·교통 등 민생범죄는 독립적으로 처리할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학수사와 사이버범죄수사의 경우 경찰의 현장 경험이 검찰을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수사권 조정’ 갈등은 ‘검사 스폰서 향응’ 의혹을 계기로 검경 개혁을 위한 정부 태스크포스(TF)의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균관대 김민호(법학) 교수는 “검사 향응 파문도 ‘검사들만 포섭하면 된다’는 일반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세대 한상훈(법학) 교수는 “단순 사건의 경우 경찰에 수사를 맡기고 검찰은 경제범죄·마약·조직폭력 등 특별수사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검찰만이 기소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 ‘기소독점주의’ 완화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상설 특검제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국회를 거치지 않고 특검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대안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경우 고위공직자 비리를 상시 감시할 조직을 신설해 기소권을 주는 것이다. 서울대 이효원(법학) 교수는 “형사소송법은 기소권 행사 주체를 검사로 제한하고 있지만 특검법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위한 특별법 제정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검찰에서는 ▶일반 시민에게 기소의 타당성에 대한 심사를 맡기는 일본의 ‘검찰심사회’나 ▶중요 사건 기소 여부 판단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국의 ‘대배심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조국(법학) 교수는 “제대로 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반드시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기관에서 기소권을 행사하면 국가 형벌권 행사 기준이 달라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여권, 검찰에 공세=여권은 검찰을 향해 일제히 공세를 취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12일 “(검찰의) 권한과 권력을 쪼개서 남을 주거나, 새 권력을 입히는 것은 답이 아니다”며 검찰 개혁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13일 오전 중앙선거대책위 회의에서 “자기 스스로 변화하고 개혁해야 할 권력기관이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검경 개혁을 정치적인 문제로 몰아가면 더 큰 불신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박형준 정무수석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은 이 국면에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좋다”고 일침을 놓았다.

여권과 검찰이 대립하는 모습에 대해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검찰총장이 대통령 말도 무시하고 이 정부가 과연 위계질서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홍혜진·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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