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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외교를 위한 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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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으로 달아올랐던 '자주외교' 논란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소 한 자락에 다시 잠잠해졌다. 조용한 기간이 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때가 자주외교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기에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다.

*** 우리 실력과 훈련 수준에 맞춰야

자주외교와 관련해 먼저 유념할 점은 완전한 자주성이란 없다는 것이다. 일방주의로 조명난 미국조차 매사를 자기 멋대로 하지 못하는데 오늘날 지구상에 미국을 상대로 엄밀한 의미로 대등외교를 펼칠 힘을 지닌 나라는 없다. 하물며 오랫동안 미국에 의존해 살아온 대한민국의 경우에랴. 따라서 '자주외교'는 어디까지나 '가급적 자주적인 외교''자주성을 최대한으로 키워가려는 외교'라는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한가지 유념할 점은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상대적인 자주외교마저 거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나라가 확보한 자주역량만큼만 가능한 것이며 자주외교를 위한 범국민적.범사회적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노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이나 취임 초기의 언동에는 훈련의 밑받침이 부족한 자주외교론자의 모습이 역력했다. 지지자들의 열정을 곧 국민적 역량으로 오해하는 듯도 싶었다. 그런 과수(過手)가 또 다른 과수를 부른 결과 취임 후 첫 방미에서는 자주외교와 줏대 있는 처신에 오히려 손상이 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상대가 비록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도 '가급적 자주적인 외교'를 하고 지금 우리 형편이 자주성과 아무리 거리가 멀지라도 '자주성을 최대한으로 키워가려는 외교'를 하자는 목표 자체야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러한 자주외교 노력이 우리의 실력과 훈련 수준에 적합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느냐 아니냐를 따지는 차원이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LA 발언에 대한 비판도 그런 차원의 문제제기가 많았다. 예컨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과는 영원히 달라진 미국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질없는 요구를 했다거나, 한국의 실력으로 도저히 감당 못할 대미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행히도 대통령이 미국과의 아무런 사전조율도 없이 무모하게 대들었을 거라는 추측은 빗나갔지만, 철저한 훈련에 입각한 자주외교를 해달라는 주문이야 노 대통령인들 외면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나 정부 인사들의 훈련만이 아닌 범국민적 훈련이다. 여기에는 미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대미관계를 누구보다 중시한다는 사람들의 훈련과 자기쇄신도 포함된다. 가령 9.11 이후의 미국이 자국의 세계전략을 한국의 요구에 따라 완화할 의지도 여유도 없게 되었다는 지적은 옳지만, 이렇게 변한 미국은 한국이 자기네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더라도 옛날처럼 한반도의 안정을 보장하고 경제를 지원해줄 의지도 여유도 없어졌다는 또 다른 변화를 겪었음을 어째서 간과하는가. 전문가라면 그 정도는 의당 알아서 국민에게 일러주고 함께 대책을 고민해야 할 터이다.

이번 한.미 정상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다고 해서 평화적인 해결이 임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이 한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하기 힘들어졌을 뿐 당분간은 시원한 해결도 없고 전쟁으로 가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황이 될 공산이 크다. 북은 북대로 개방체제에 대한 훈련 부족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 데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긴장상태의 지속이 일본의 친미노선을 강화하고 한국의 자주외교를 견제하는 등 여러 모로 달콤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 북한 설득도 중요한 과제

이런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북에 대한 설득도 지속해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를 만드는 작업을 끈질기게 진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훈련과정이다. 물론 이 훈련은 외교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실행하지 못할 자주외교를 자제하는 일이 중요하듯이, 자주외교라는 말만 나와도 이제 우린 다 죽었다는 듯이 겁을 먹고 울먹이거나 정부 내에 제5열(요즘 말로는 아무개의 2중대)이 준동하고 있다고 분노하는 습성을 청산하는 것도 훈련의 기초요목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