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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만큼 힘든 교사 임용 <하> 잘 가르치기 경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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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앙일보 분석 결과 전국 42개 사범대의 354개 학과를 졸업한 8710명이 2007~2009년 전국 중·고교(국공립과 사립) 교사가 됐다. 단일 학과로는 공주대 특수교육과 출신이 1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영어교사는 고려대 영어교육과 출신이 124명으로 1위였다. 3년간 평균 국공립 중·고교 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16대 1이었다. 임용고시 응시생은 늘고 선발 인원은 적어 경쟁률은 계속 치솟을 전망이다.


교사 생활 6년째인 서울의 모 공립고 박모(31) 교사도 7년 전 10대 1의 경쟁을 뚫었다. 그는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열심히,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초심과 현실은 차이가 심해 힘들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일은 업무의 20% 정도이고, 학교 행사나 잡무에 힘을 빼기 일쑤여서 교직에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7년째 제자를 키우고 있는 경기도 S고 김모(31) 영어교사는 “(나 자신이) 문제집 풀이 교사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교사가 됐을 때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회화 중심의 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대입 장벽에 막혀 생각대로 가르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피 말리는 ‘임용 전쟁’에서 살아남은 교사들 상당수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직 진입 문턱은 높지만 일단 교사가 된 다음에는 초심과 열정이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달 한국교총이 주최한 전국현장교육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인천 가좌고 박종립(37)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보다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그는 3년째 동료 교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수업교재를 직접 제작했다.

같은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안산 대월초등교 김계형(38·여) 교사도 학생들의 국어 어휘력을 길러주는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올 2월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영어수업발표대회에서 1등급을 받은 경북 우보중 백선미(38·여) 교사는 “학원강사들이 수업 외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처럼 교사들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쟁력 유지하려면=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사들의 실력은 최고 수준이다. 시험에서 떨어져 일자리를 못 구한 사범대 출신 상당수는 학원강사로 취직하기도 한다. 문제는 일단 교단에 서면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 ‘한 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 시스템이 유지돼 자극이 없다는 데 있다. 잡무가 많은 근무 환경도 문제지만 평가를 받지 않아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공립고 교장은 “5년, 10년 교사를 하다 보면 소신이 사그라지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는 학원강사보다 가르치는 실력이 뒤처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제대로 된 재교육이나 연수 프로그램도 빈약하다. 교육 과정이 바뀔 때 교사 연수가 이뤄지나 강당에 수백 명씩 모아 놓고 장학사 강의를 듣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교사들이 연간 100시간 의무적으로 교과 연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일정 기간 후 교사 자격증을 갱신하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교사위원회(Teachers Council)’가 전체 교사를 3년마다 재심의한다. 자격 미달로 판정되는 교사는 등록이 취소되거나 연수를 받아야 한다.

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교원양성평가센터 소장은 “교사들이 갈수록 경쟁력을 잃는 것은 평가와 연수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한 요인”이라며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우수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재교육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강홍준·이원진·박유미·김민상 기자, 유지연 중앙일보교육개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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