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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이식형 인공심장 한 · 미 · 일 '3각 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제13회 세계 인공장기학회가 열린 일본 오사카 국제회의장.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선경 교수가 올해 6월 자신이 체내이식형으로는 세계 최초로 이식수술을 한 인공심장 '애니 하트'의 수술 사례(본지 6월 13일자 1면 보도)를 지난 6일 발표했다.

"(한국이 자랑하는)체내 이식형 인공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는 수술 후 얼마나 생존했습니까"(일본 도쿄대 의대 다카타니 교수)

"(안타깝지만)12일입니다"(선경 교수)

미국의 체내 이식형 인공심장 '아비오코'를 이식받은 환자가 1백일이 넘도록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을 빗댄 일본의 공격이었다.(미국에서는 한국보다 한달 뒤인 7월에 첫 체내 이식형 인공심장 수술이 있었다.)

이어 다카타니 교수는 아비오코보다 크기를 절반 가까이 줄여 체중 50㎏의 조그만 체격을 가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형 인공심장을 개발해 송아지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엔 한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당신의 인공심장은 폐에 물이 차는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요"(선경 교수)

"동물실험에선 없었지만 사람에선 아직 해보지 못해서… "(다카타니 교수)

일본의 인공심장은 만들긴 쉬우나 펌프력이 약한 비(非)펄스식인 데다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치지 못했다는 단점을 지적한 것이다.

체내이식형 인공심장을 둘러싸고 한.미.일 3국간 불꽃 튀는 각축전이 일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미국이다.이번 학회의 개막식에서 미국 국립보건원 인공장기센터 웟슨 소장은 "지금까지 4명의 말기 심장병환자에게 아비오코를 이식했으며 내년 상반기까지 10명에게 추가로 이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독주에 도전장을 낸 곳이 바로 한국이다. 서울대 의대 의공학과 민병구 교수가 개발한 체내 이식형 인공심장 애니 하트를 아비오코보다 한 달 앞서 선경 교수가 이식한 것.

아비오코가 심장을 떼어내고 펌프장치를 이식하는 방식인데 비해 애니 하트는 심장은 그대로 두고 배에 이식해 심장의 펌프작용을 도와준다

애니 하트는 아비오코를 능가하는 장점이 많다. 아비오코는 80㎏이 넘는 거구의 환자에게만 이식이 가능하며 대당 1억~2억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반면 애니하트는 50~60㎏ 체중의 사람에게도 이식이 가능하며 2천만원 안팎이면 가능하다.

문제는 첫 수술환자가 12일 만에 숨졌다는 것. 그러나 선 교수는 "환자는 수술 후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는 등 회복 추세를 보였으나 지병인 간경변이 악화돼 숨졌다"며 "수술과정이나 인공심장 자체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인공심장센터 하라사키 소장은 "애니 하트 이식환자가 아비오코처럼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만 보여주면 비용과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애니하트가 우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민병구 교수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현재 식약청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얻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며 "인공심장은 한국이 가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 첨단의학 분야인만큼 신속한 허가와 연구비 지원 등 국가의 배려가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도쿄대 의대 이치하시 교수는 환자의 배에 작은 서버를 심어 인터넷을 통해 원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같은 대학 오제키 교수는 배터리를 대신해 무선으로 펌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치를 선보였다.

이 경우 이식한 환자가 먼거리도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오사카=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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