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세울 때 '성별 영향평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내년부터 정책이 남녀에게 각각 미치는 영향을 따져 이를 토대로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게 된다.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와 비슷한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시행되는 것이다.

여성부는 내년부터 성별에 따라 성과가 크게 차이 나는 정책을 선정, 그 원인을 찾아낸 뒤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성별영향분석평가제를 본격 시행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를 위해 여성부는 ▶보건복지부의 암 검진 정책▶노동부의 직업훈련정책▶문화관광부의 문화시설과 생활체육시설▶과학기술부의 인력양성정책 등 10가지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대해 올 연말까지 관련 연구기관에 성별평가를 하도록 의뢰했다.

여성부의 손애리 사회문화담당관은 "10개 정책의 성별평가에서 평가지표가 개발되면 이를 각 부처에 모델로 제시해 내년부터 담당 공무원이 자체적으로 성별 평가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례 및 방법=올 7월부터 시행 중인 '공중 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각 시.도에 공중 화장실을 설치할 경우 남성 화장실의 대소변기 수와 여성 화장실의 대변기 수가 최소한 같거나 아니면 여성 화장실을 더 많도록 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용변을 보는 평균 시간이 남성(46초)보다 여성(79초)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남녀의 옷과 신체구조, 생리적 요구 등을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남녀에 각각 미치는 영향을 따져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미비점을 보완한 사례다.

여성부는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올 연말까지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암관리 정책에 대한 성별평가를 하도록 의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송현종(책임연구원)박사는 "남녀 구분없이 무료 암 검진을 시행하고 있지만 남성 검진율이 여성보다 높게 나타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라며 "여성 검진율이 낮은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토대로 여성의 검진율을 높이는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조사 결과 자궁암 등의 검진 환경이 나쁘거나 검진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원인이 분석되면 검진 환경을 개선하고 보육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김경희 교수는 "대중교통 이용이 많은 여성을 위해 대중 교통 투자를 늘리고 주차장의 안전시설을 강화하는 등 성별 평가가 적용돼야 할 분야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 외국에선=캐나다 여성지위청은 성별 평가를 통해 남성의 당뇨병 검진율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여성은 출산 전후 검진에서 당뇨 체크를 하지만 남성은 상대적으로 검진 기회가 적어 합병증이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뉴질랜드나 유럽연합(EU).일본 등에서도 성별 평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