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발언' 파문…고개숙인 김근태] 왜 노대통령, 유감표명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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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칠레를 방문 중이던 지난 19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연기금 관련 발언을 보고받았다. 첫 반응은 "여러 가지로 (김 장관에 대해) 배려해 줬는데 참 안타깝고 아쉽다…"는 유감 표명이었다고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을 밝힌 것은 이번 사태를 보는 노 대통령의 인식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태를 정리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장관이 노 대통령을 상대로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6월 14일 자신의 명의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돌렸다. 아파트 원가 공개와 관련해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 보자"고 했다.

이에 앞서(6월 9일) 노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 "분양가 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시장 메커니즘이 존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급장' 발언은 이에 대한 반박이었다. 노 대통령과 김근태 의원의 충돌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당시 노 대통령은 김 장관 발언 다음날인 15일 국무회의에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책임지는 정책, 그것이 우리 정부가 가져야 될 원칙"이라고만 정리했다. 김 의원을 향한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없었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이번엔 인간적 섭섭함까지 언급했다. 이 문제로 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논의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전해진 노 대통령의 생각은 두 가지다. 첫째, 발언의 방법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국무회의와 경제 장관회의 등 공식 라인을 외면하고 인터넷을 통해 생각을 밝힌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자신이 강조해 왔던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의 큰 원칙이 훼손됐다고 본다는 것이다. 노기도 드러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부처 간 갈등은 어느 정부에나 있지만 적어도 참여정부에선 부처 간 조정시스템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강조 사항"이라며 "김 장관의 방식은 정부 시스템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노 대통령의 우려"라고 말했다.

둘째, 문제 제기 의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다. 또 다른 청와대 인사는 "연기금 문제는 한나라당의 요구까지 고려해 독립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정리가 된 상태"라며 "김 장관 발언으로 원안이 변경돼 복지부 소관으로 방향을 틀었고, 여기엔 정치적 계산이 담겼을 수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문책 여부에 대해 김종민 대변인은 "아직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분명히 당사자에게 전달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김 장관의 거취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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