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봉 기자의 도심 트레킹 ③ 서울 능동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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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2번 출구를 나와 어린이대공원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길. 넓게 트인 길, 높게 뻗은 가로수가 시원하다.

혼자보다 둘이 걸을 때 산책로의 조건은 까다로워진다. 애인과 걷는다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필수이고, 아이와 걸을 때면 위험하지 않은 길이 우선이다. 유모차와 함께 걷는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요즘 덩치 큰 유모차도 쉽사리 지날 수 있게 넓어야 함은 물론, 높낮이 없이 평탄해야 한다. 인도에 턱도 없어야 할 것이고, 보도의 포장상태도 좋아야 한다.

이번엔 산책하면서 눈치보기 쉬운 ‘유모차 오너 드라이버’를 위한 길을 준비했다. 어린이대공원과 세종대 정문 앞 인도다. 능동로라고 한다. 어린이대공원 안도 말할 것 없이 좋지만 공원까지 가는 길도 마치 공원 같다.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어린이대공원 정문 쪽으로 20m만 걸어나오면 대로가 펼쳐진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아니라 인도인데도 너비가 족히 6m는 넘는다. 화강암 재질의 보도가 촘촘히 깔렸다. 우묵한 데나 파인 데가 없어 유모차 바퀴가 잘 굴러간다. 경사도 높은 데 낮은 데 없이 평탄했다.

양편 화단에는 진분홍 철쭉을 심었다. 봄볕을 받아 색이 선명하다. 길을 따라 젊은 느티나무들이 푸른 잎을 한창 피워내고 있다. 대학생들이 학기 중이라 이 길을 따라 걷기는 하지만 길이 넓어 비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하철 2번 출구에서 200m쯤 내려오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이곳까지는 2번 출구에서 나와 걸어가도 멀지 않지만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오르기 불편하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지하철역 안 1번 출구로 가는 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50m쯤 내려가면 횡단보도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세종대 캠퍼스도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보도가 좁고 턱이 많아 유모차를 끌고 가기는 불편하다. 아이들이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 게 좋다.

세종대 정문을 지나면 담을 따라 목제 데크가 이어진 길이 나온다. 길의 폭은 2m 정도. 키가 20m가 넘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멀리 이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세종대 탑’이 보인다. 오솔길 같아 제법 느낌이 좋다. 길목에 벤치가 놓여 앉아 쉴 수 있다. 이 길은 세종대 담 옆을 따라 300m가량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화강암 보도가 계속된다. 두 길 사이에 들락날락할 수 있는 통로도 군데군데 있다. 도중 데크가 좁다고 생각된다면 옆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데크의 끝에 있는 ‘샹그라’라는 레스토랑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길 옆으로 차가 주차돼 있지만 길이 좁지는 않다. 차가 가끔 드나들기는 하지만 통행이 잦지 않아 유모차를 끌고 걷기 불편하지 않다. 이 길은 ‘세종대 돌담길’이다. 왼쪽으로 한옥처럼 지어진 세종대 박물관이 보인다. 골목에서 50m 들어가 오른쪽에는 ‘작은예수수녀회’라는 간판이 보이는 단독주택이 있다. 그 옆에 화장실이 있어 아이의 급한 볼일을 해결할 수 있다.

돌담길은 150m 정도 이어진다. 이후에는 주택가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꺾어 30m쯤 더 간 뒤 U턴 식으로 돌아 나오다 보면 100m 뒤 ‘동화사랑연구소’라는 간판을 건 단독주택이 있다. 구연동화 전문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다. 골목을 빠져나온 뒤 ‘VIPS’를 뒤로 두고 50m만 가면 2층에 ‘동화사랑’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는 동화책과 구연동화를 할 수 있는 간단한 소품을 판다. 손가락에 끼우는 동물 인형, 스티커형 인형 등 소품이 다양하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조금 불편해지기 때문에 다시 어린이대공원 정문 쪽으로 길을 건너는 것이 좋다. 어린이대공원 정문을 향하는 길에는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이 나온다. 대개 유치원생 이상 연령의 아동을 대상으로 지진·풍수해를 체험하는 곳인데 이곳에 수유방이 있다. 안에 아기 침대 2개가 놓였다. 한데 귀찮은 일이지만 미리 예약(02-2049-4000)하고 가야만 이 방에 들어가 젖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 수 있단다. 어린이대공원 정문 안쪽 분수대 옆 화장실에도 기저귀방이 따로 있다. 분수대 주위에는 나무그늘 아래 벤치가 놓였기 때문에 시원하게 앉아 쉬기 좋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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