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놀고 먹는 노조간부 없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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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조(위원장 羅永燮)가 새 집행부 취임에 맞춰 내놓은 노조 개혁안은 요즈음 어두운 경제 현실에서 신선한 충격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노사 갈등이 무엇보다 신뢰 상실에서 기인한다며 스스로 개혁해 상생의 길로 나서겠다는 다짐이야말로 노사 화합의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 노조는 어제 개혁안에서 위원장을 포함한 본부장들은 노조 전임을 포기하고 근무외 시간을 쪼개 조합일을 보며 위원장 활동비 등 소모성 경비를 줄여 조합비도 기본급의 1%에서 0.8%로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놀고 먹는 노조 간부는 없어져야 하고 노조가 일개 이익집단으로만 전락하는 잘못은 범하지 않겠다며 내부 개혁을 단행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우리 노사 관계는 미래를 함께 개척해나가는 파트너가 아니라 적대적 양상이 강함은 여전히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올해 들어 대규모 분규는 줄었지만 구조조정 반대, 주5일 근무 등 주요 쟁점에서 가파른 대치를 계속해오고 있다. 노조 운영에도 집행부의 관료화로 유연성을 잃은 곳도 있고, 거대 노조일수록 강경노선 투쟁에 앞섰던 곳도 있다.

그러나 올해 초 공공기관 파업의 전위를 자임할 정도로 강성을 띠었던 서울지하철공사 노조가 임단협 3년 만에 무파업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 도시철도공사 노조가 가세해 조합원의 복지와 노동조건 개선에 주력하는 쪽으로 변신, 극한적 파업 투쟁으로 시민들의 외면을 불러왔던 종래의 노조활동 방식을 깨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전임자 급여 문제만 해도 노사간 쟁점으로 사용자가 2006년까지 부담하는 한시적 타협 상태다. 재정이 취약한 노조 입장에선 불가피한 면도 있겠지만 떳떳한 일은 아니어서 전임자의 최소화를 포함해 언제든 대안 모색이 필요했었다.

도시철도공사 노조 개혁은 노사가 서로 돌아보고 어려운 경제 현실을 타개해나가는 데 새 바람이 될 것으로 본다. 노조 스스로 개혁의 고삐를 당긴 만큼 사용자측도 투명 경영과 고용 안정으로 화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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