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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여체보다 아름다운 산하에 홀딱 반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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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여자의 몸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어찌 우리 산하(山河)에 비길 수 있을까요. 한반도의 등뼈와 정맥 등을 돌아보면서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65세 동갑내기인 전직 교장 두 사람이 1997년부터 국토대장정을 계속하고 있다. 주인공은 서식원(徐植源)전 광양 골약초등학교장과 이동식(李東植)전 나주 금천남초등학교장.

"일제 때 일본 지질학자가 정리한 산맥의 개념을 바탕으로 편찬한 지리 교과서는 뭔가 이상했습니다. 산줄기가 강을 넘고 강이 산을 넘는 식이었지요. 그래서 우리의 전통 지리관(地理觀)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습니다."

나주교육청에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두 사람은 97년 7월 의기투합했다. 조선 영조시절 실학자인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이 지은 『산경표(山經表)』의 지리관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산을 타면 노후 건강관리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부터 시작했다. 휴전선 밑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6백79㎞를 주말마다 무박(無泊)2일의 산행을 거듭해 99년 광복절에 끝냈다. 영취산(전북 장수)~백운산(전남 광양)의 호남정맥 4백60㎞도 종주했다.

지난 11일에는 총 3백97㎞에 이르는 낙동정맥(洛東正脈) 답사를 마쳤다. 낙동정맥은 전통 지리관인 1대간.1정간.13정맥 중 하나로 태백산맥의 남쪽 부분이다. 지난해 6월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산마루를 따라 걸어서 주왕산(경북 청송).간월산(경남 밀양).금정산(부산)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까지 올랐다. 한번에 보통 3박4일씩 모두 열세차례에 걸쳐 릴레이 산행을 했다.

이들은 "태백시 황지연못에서 봤던 물이 1천리를 내려와 금정산 위에서 낙동강 하구로 흘러 펼쳐지는 걸 볼 땐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달 말에는 낙남정맥(김해 신어산~지리산 영신봉)에 도전할 계획이다. 7개 구간별로 답사 계획서를 짜놓았다.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강원도 경계에 있는 산에 텐트를 쳤는데 곰으로 보이는 짐승이 나타나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지뢰밭을 만나 아래 능선으로 돌아가다 빗물에 흘러내린 지뢰도 있다는 얘기를 군인들에게 듣고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 나이에 20㎏씩 나가는 배낭을 메고 험한 산줄기를 오르내리는 게 가장 힙듭니다. 때론 나무나 바위 밑에서 한두시간 눈을 붙인 뒤 밤새도록 걷기도 합니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만큼 개발로 변하고 망가진 곳이 많다"며 "통일이 되면 북녘의 나머지 백두대간(향로봉~백두산)과 장백정간, 다섯 정맥의 마루금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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