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문제는 항상 부모에게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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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스님 지음, 북폴리오, 240쪽, 9000원

우리의 모든 신경이 모여 있는 ‘민감한’ 부위인 교육. 이 사회는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1. 오늘은 수능일입니다. 예년과 같은 수능 추위는 없을 듯합니다. 관공서와 일부 기업은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출근시간을 한 시간 늦췄습니다. 듣기 평가가 있는 시간에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는 … .

#2. 이제 8세 정도 됐을까. 아이 하나가 가방 4개를 들고 메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가방 들어주기 하니?” 옆에 서 있던 내가 물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시 물었다. “학원 가방들인데요.” 아이가 대답했다. 오후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3. 지난 주말 미국에 1년간 연수를 다녀온 선배와 술자리를 함께했다. “혹시 기러기 돼서 혼자 돌아온 건 아니죠?” 장난스럽게 물었다. 술잔을 먼저 비우는 선배. “하하… 적어도 1년은 혼자 살아야겠다.”

우리는 늘 이런 얘기를 한다. 힘은 힘대로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늘 최악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 요즘 같은 입시철은 늘 비슷한 문제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서광 스님은 『문제는 항상 부모에게 있다』를 통해 교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보스턴에서 교민을 위한 상담과 교육 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부모에게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개의 경우 대학이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성장은 심각히 훼손당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좋아하고, 아이보다 더 실망한다. 서광스님은 “부모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면 아이는 도리어 자기 인생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애착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아이는 “내가 하는 공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끔찍할 정도로 긴 유예기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단순히 공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괴롭히기 위해 밥을 굶고, 부모에게 불만을 품은 자식이 자기 스스로를 망치는 것으로 갈등을 해소하려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아이가 자기 삶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변두리를 맴돌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은 부모들이 제 위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빠는 엄마가 독차지하고 있는 자녀 교육의 기쁨을 되찾고, 엄마는 아이보다 소중한 ‘남편’을 되찾으라는 것 등. 스님이기 때문일까. 해결 방법은 윤리적이고 개인적이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난다. 그런데 뒤끝이 영 찜찜하다. 부모 뒤에 버티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건너뛰었기 때문이 아닐까. 싫든 좋든 교육은 가장 강력한 사회 계층 이동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진학에 올인하는 부모의 행동은 실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기러기 아빠’와 같은 가족해체(?)를 무릅쓰고라도 아이의 교육에 집착하는 우리의 부모를 개인적·윤리적 차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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