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안 배경·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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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무부가 특별감찰본부의 조사결과 발표 1시간 뒤에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한 것은 G&G그룹 회장 이용호(李容湖)씨 사건 등으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상황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지검이 지난해 李씨를 입건유예한 의혹과 관련, 당시 서울지검장과 3차장.특수2부장 등 간부 3명이 한꺼번에 사표를 제출한 것은 검찰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과 관련, 당시 이건개(李健介)대전고검장이 사법처리 되는 등 검찰 고위간부들이 개인비리와 관련돼 사법처리된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특정사건 수사지휘 라인이 한꺼번에 인책성 사표를 제출한 경우는 없었다.

최경원(崔慶元)법무장관은 12일 "더 이상 검찰 개혁을 늦출 경우 사정의 중추기관으로서 검찰의 위상과 기능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법령을 개정하지 않고도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즉각 시행하는 등 개혁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개혁방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검사들에게 사실상 '항변권'을 인정하는 것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고위인사 구속영장 청구 때 사전에 승인을 하는 제도가 즉각 폐지되는 것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부에서는 검찰청법이 규정한 상명하복(上命下服)규정이 정치적 사건 등에서 검사들의 공정한 사건처리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상명하복 규정은 법률상 단독관청인 검사가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고 통일적인 법 적용을 하도록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항으로 독일 등 외국에도 이같은 규정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명하복 규정은 그대로 두면서 상사들의 부당한 지시가 있을 때 부하검사들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사실상의 항변권(抗辯權)을 인정하기로 한 것은 법무부와 정치권의 논리가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한편 이같은 검찰개혁방안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각종 규정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검찰 지휘부의 정치적 중립의지와 검사들의 공정한 수사의지"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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