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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산책] 피란 소년서 프로야구 사장된 김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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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김응용 사장이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다가 대구 수성관광호텔 앞뜰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이거 영 어색해서…"라면서 사진 찍기를 꺼렸다. 대구=조문규 기자

30년 넘게 '코끼리'로 불려온 그다. "한일은행 1루수 때 코끼리가 비스킷 먹듯 넙죽넙죽 공을 잘 받아 생긴 별명"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하지만 장대한 몸집 때문에 얻은 별칭인 것도 틀림이 없다. 1m85cm의 키에 110kg의 무게. 60대 중반(호적으로는 63세, 실제론 65세) 중에 그런 체구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프로야구 삼성 사장 김응용. 삼성의 파격적인 인사 발표 일주일 뒤인 지난 16일 대구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중년 이상에는 '영원한 4번 타자'로 기억되는 그다.

더그아웃 밖의 그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 평소처럼 눌변이거나 퉁명스럽지 않았다. 못마땅한 듯 무표정한 모습도 없었다. 대신 넉넉함과 웃음이 자리 잡았다.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고 처음으로 '감독 출신 사장'이 된 여유 때문일까.

차 한 잔 가볍게 마시고 그는 "밥이라도 먹으면서 인터뷰하자"고 했다. 불고기나 찌개 종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걸음을 재촉한 곳은 뜻밖에 부근의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왕새우를 곁들인 안심스테이크와 크림수프를 주문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는 돌아서면 배가 고파져. 불고기는 너무 달짝지근하고."


▶ ① 부산상고 선수 시절의 김응용 ② 한일은행 코치 겸 선수이던 1971년 1월 훈련 모습. ③ 71년 12월 약혼사진 ④ 해태 감독을 맡은 83년 6월 구단버스 안에서 이상윤(현 삼성코치) 선수와 함께 ⑤ 2002년 11월 삼성 감독으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한식은 배 빨리 꺼져 거의 양식

지난해 가을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 출입증이 생기고 나서 그는 경기가 없는 날이면 세끼를 두툼한 양식으로 해결한다. 홈경기 때도 아침.점심 두끼는 미군부대에서 때운다.

"부산 피란시절인 아홉살 때부터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지. 야구선수가 되면서 고기를 즐겨 먹었어." 피란 얘기가 나오면서 그는 자연스레 옛날 얘기부터 들려줬다. 피란소년이 프로야구단 사장이 된 얘기는 재미있다.

그의 고향은 평안남도 평원군 검산면이다. 1.4 후퇴(1951년) 때 어머니와 누나.여동생을 두고 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잠시 머물다 돌아간다는 게 그만 평생이 됐어. 그런데 어머니.누나.여동생 얼굴이 전혀 생각이 안 나. 이상하게도 고향집과 골목길, 집앞 수로 확장공사를 하던 기억은 생생한데 말이야…."

그는 이렇듯 반쪽 난 기억 때문에 사기도 당할 뻔했다. 수년 전 모르는 사내가 여동생이 보냈다는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어머니와 누나.여동생이라는 세 여자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수원에 사시는 이모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야 사기임을 알았지. 하마터면 브로커에게 속아 큰돈을 빼앗길 뻔했어." 통일부에 이름과 함께 수차례 방북신청을 해봤지만 아직까지 생존조차 확인할 수 없다.

"명절 때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생각이 절실해. 그런 때면 임진각을 찾아가 보기도 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지."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났다.

그는 반주로 생맥주 두잔을 마셨다. 그의 주량은 원래 '말술'이다. "매일 밤 소주 서너병에 맥주 열병쯤을 섞어서 마셨어. 소주만 마시면 취기가 늦게 오기에 섞었지. 술을 안 마시면 잡념이 많아져 잠이 안 왔거든.'투수를 언제 누구로 바꿨어야 했는데…, 내일 작전은 뭘로 할까…'이런 생각들이었지." 하지만 그는 환갑 이후부터는 건강을 생각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사장 승진 없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면 부산의 모교로 내려가 야구 연습을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피란살이로 부산에 정착한 그는 성지초등-개성중-부산상고를 거쳤다.

"차에 과자를 가득 채워 가서 야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어. 나중에라도 은퇴하면 꼭 그렇게 할 거야."

그가 야구를 시작한 건 중1 때였다. 학급 대항 야구대회에 나갔다가 야구선수로 뽑혔다. 60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국내 최고 실업팀이던 농업은행(현 농협)에 들어가려다 퇴짜를 맞았다. "어쩔 수 없이 한국운수에 연습선수로 들어갔지. 정말 손에 피가 나도록 타격연습을 했어." 이후 대한통운-크라운맥주-한일은행을 거치면서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부동의 4번타자로 긴 전성기를 누렸다.

환갑 전엔 매일 '소폭' 수십잔 마셔

그는 사장 취임(다음달 1일)으로 가족 네 명이 한 집에서 온전히 살게 되는 기쁨도 얻었다. 해태 감독이 된 1983년 이후 23년 만이다. 해태 감독 때는 광주에서, 삼성 감독이 되고서는 대구에서 거의 혼자 지냈다. 일주일에 한번 부인 최은원(59)씨가 내려가 빨래.청소 등을 해줬다. 이제 서울 신당동 집에서 선릉역 근처 사무실로 출퇴근하게 된 것이다.

미대 출신의 부인과는 고교 동창 소개로 만나 1년 연애 끝에 72년 결혼했다. 서양화를 공부한 큰딸 혜성(31)은 용인대 등에 강의를 나간다.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둘째딸 인성(29)은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했다. 두 딸 모두 미혼이다.

김 사장은 조만간 전문경영인인 타 구단 사장들과 만나야 한다. 지난 9일 기자회견 때는 "두렵다"는 말로 심경을 대변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는 자신에게 쏠릴 세간의 관심이 무척 부담스럽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그에게 웨이터가 "김 사장님~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하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에이, 사장은 무슨…. 계속 감독이라고 해."

대구=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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