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도 색깔이 있다면 가을 산에서 맞는 바람의 색깔은 갈색입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억새 평전에 엷은 햇살이 비치면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못다 쓴 가을의 전설을 잉태합니다. 울타리 옆 감나무에는 떫은 물이 들었지만 가을 산은 지금 붉은 물이 묻어날 정도로 단풍이 한창입니다.
가을 산은 단풍으로 말하고 억새로 마무리합니다.
꽃이 오므라들듯 10월도 초순을 지나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가을 산에 오르면 '갈색 추억'을 머금은 억새가 '대자연의 교향악'을 들려줍니다.
어느 산이건 슬픈 전설을 간직하지 않은 산이 없겠지만 경기도 포천군 명성산(9백22m)은 잃어버린 고구려의 영토를 수복하려다 끝내 꿈을 못이루고 죽은 궁예의 넋이 서려 있는 서울 근교의 명산이다.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명성(鳴聲)산은 마의태자가 망국(亡國)의 한을 품고 이곳까지 오자 산이 울었다는 설(說)이 있다. 또 궁예가 왕건의 군사와 격전을 벌이다 크게 패해 울면서 도망칠 때 울음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는 얘기도 있다. 명성산 위에는 궁예가 왕건의 군사에게 쫓겨 몸을 숨겼던, 2백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자연동굴(궁예왕굴)이 있다.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영축(1천59m.경남 양산시)-신불산(1천1백59m.울산시 울주군) 일대를 비롯해 화왕산(7백56m.경남 창원시), 지리산의 만복대(1천4백33m.전북 남원시),'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8백9m.전남 영암군), 천관산(7백23m.전남 장흥군), 그리고 민둥산(1천1백20m.강원도 정선군)등이 억새로 유명한 산이다.
명성산은 여기에 비하면 억새 군락이 작지만 서울에서 손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명성산행 들머리는 유원지 내 상동주차장. 돌을 다듬은 너덜길이 등산로 초입부터 시작되는데 10분 정도 오르면 비선폭포에 닿게 된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을 끼고 30여분 오르면 물안개를 따라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등룡폭포가 나타난다. 2단 폭포며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의 복숭아탕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아름답다.
여기서 가파르고 험한 왼쪽 길 대신 완만하게 나있는 오른쪽 길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쉬엄쉬엄 20분 정도 걸어 고개를 넘으면 눈앞에 억새밭이 펼쳐진다.
등산로는 서쪽을 향해 나있는데 억새밭에 오르면 시간상으로 정오를 지나므로 햇볕에 비친 억새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산정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삼각봉까지는 20여분을 더 올라야 한다. 하산길은 삼각봉 아래 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게 된다.
총 산행 거리는 6.5㎞로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전국의 유명 억새 산행지는 매년 10월이면 억새 축제를 개최한다. 명성산 억새제는 13~14일 기념등반대회와 사진전.국악공연.놀이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표 참조>
서울서 2시간여 거리에 있는 명성산은 '오른 만큼 보여주는 산은 정직하다'는 평범한 이야기를 가슴 속으로 느끼면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주말 가족 산행지로 제격이다.
포천=김세준 기자
<여행 쪽지>
▶즐길 거리=경기도 관광협회 산정호수 관광지부가 운영하는 산정호수 유원지(031-532-6135)에는 바이킹.크레이지 댄스.범퍼 카 등을 갖춘 놀이동산과 자인사가 있다. 호반에서는 모터보트와 노보트를 즐길 수 있다. 입장료 1천원.
자인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오른 후 자신의 시호(神聖)를 따서 조그마한 암자를 세운 것이 시초. 산불로 소실되자 충열왕 3년(1227년)재건됐으며 6.25 때 전소된 것을 1964년 다시 짓고 자인사로 개명했다.
이밖에 인근에 한탄강.고석정.순담계곡.직탕폭포.삼부연폭포가 승용차로 1시간이내 거리에 있다.
산정호수 한화콘도(031-534-5500)에서는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 수도 있다. 요금은 어른 기준으로 5천(온천)~7천원(수영장+온천).
▶먹을 거리=갈비로 유명한 이동갈비촌이 산정호수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이곳에는 60여곳의 갈비 전문식당이 있으며 요금은 1인분(10대)에 2만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