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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의 신중국 경제 대장정] 8. 일국양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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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선전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건물 하나를 지나면 다시 홍콩(香港)에 입국 수속을 해야 한다. 평소보다 붐빈 것이 아니라는데 간단히 2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외국인 '특혜' 를 받아서 그렇지, 중국인은 여권에다 공안 당국의 회항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다만 홍콩 주민에게는 홍콩 입국 수속이 면제된다.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한 단면이 그러했다.

그러니까 그 2시간은 출입국 비용이 아니라 '제도 이동' 에 드는 비용이다. 일국양제의 틀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정작 홍콩 반환을 보지 못했다. 반환 경축의 폭죽 속에 손을 흔드는 모습보다는 조국의 산하에 유해를 뿌리고 "내 일은 끝났다" 고 홀연히 떠나는 모습이 영웅의 풍모로는 훨씬 더 어울릴 것도 같다.

1997년 반환 이후 중국은 군대 주둔 외에 홍콩의 모든 제도와 권리를 50년 동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양제는 '안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먼저 사람이다. 본토로부터의 연고자 이민을 하루 1백50명으로 제한하지만 1년이면 5만4천명이다.

제도 불변 약속에 따른 50년 뒤면 2백70만명으로 늘어나 홍콩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다. 취업이나 소득에서 홍콩 주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티베트보다 광둥(廣東)성의 분리가 빠를 것" 이라는 농담이 농담만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돈이다. 당장 이발료만 하더라도 홍콩은 60홍콩달러(인민폐 58위안)인데 선전은 20위안이니 "식당 종업원조차 이발할 때가 되면 선전으로 가는" 풍토란다. 선전의 물가는 홍콩의 3분의 1수준이고, 홍콩 구매력의 3분의 1은 선전에 빼앗긴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선전에서 홍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하루 18만명이라면 두 도시의 명암을 짐작하게 한다. 홍콩 주민으로서 물가와 제반 편의 때문에 선전에 주거를 마련한 사람이나, 홍콩에 직장을 구하고도 그대로 선전에 눌러 사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1988년 1백73만(홍콩)달러를 주고 집을 샀어요. 그게 한때 1천4백만달러까지 오르더니, 지금은 6백만달러로 떨어졌어요. " 이 얘기를 전한 교민은 그래도 자기는 좀 나은 편이고 은행 빚 얻어 집 산 사람은 거의 파산 상태라고 했다.

예전에는 본토의 고위 관리와 '홍색 자본가' 들이 은밀히 홍콩 부동산에 '묻지마' 투자를 많이 했는데, 반환 이후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부동산 폭락이 영국인 소유의 재산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본토의 '작전' 이란 기발한 해석도 있는데, 그렇다면 물가가 기막힌 '애국' 수단이 되는 셈이다.

기업 환경의 변화도 있었다. 반환 이전의 홍콩은 노조가 없고 퇴직금도 없어서 업주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세금도 단일세로 개인은 소득에 대해 최고 15%, 법인은 16%만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

본토에서 가하는 무언의 압력으로 연금 불입이 강제되면서 가처분 소득과 소비가 줄고, 무엇보다 세원이 포착돼 업주들이 불안해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금융과 관광만은 잡으려고 했는데, 금융조차 상하이(上海)에 빼앗기는 것 아니냐고 홍콩 기업인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양제 약속은 정치나 군사가 아니라 이렇게 경제에 의해 잠식되고 있었다. 상사 분쟁을 다루는 법정에서도 유창한 영어 변론보다는 '생소한' 중국어 변론의 기회가 늘어날 전망이다.

변호사 시험에는 벌써 보통화(普通話)가 필수로 지정됐으며,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줄어들어 당국이 대책을 세우는 중이란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홍콩시 선전구' 의 자부로 살아왔으나, 머잖아 '선전시 홍콩구' 로 변할 것이라는 자조가 늘어가고 있었다. 홍콩의 살길을 본토로의 편입이 아니라 격리에서 찾으려는 한, 그 정체성 위기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아모이(Amoy)로 배운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은 거리의 야자수부터 남국의 정취를 한껏 풍기고 있었다. 건물 벽에 튀어나온 유럽풍 발코니는 식민지 문화의 흔적을 전해주었다. 해변으로 나가니 4㎞ 전방에 진먼다오(金門島)가 보였다.

대륙반공(大陸反攻)기지로서 한때는 5만여명의 대만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다는데, 중국 쪽으로는 철조망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침 일요일에 우리를 맞아준 주야옌(朱亞衍) 샤먼 시장은 "당장 전쟁이 터지더라도 샤먼에 투자한 대만 기업은 절대로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단연 노벨 평화상감이다. 그러나 그가 수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샤먼에 투자한 대만 기업은 2천여개로 투자액은 40억달러에 이른다. 대만 정부는 투자 대상과 금액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으나 제3국을 통해 '국적을 세탁하고' 들어가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도 아는 '비밀' 을 양국 정부가 모를 리 없지만,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는 시비를 벌여봐야 이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으로서야 돈을 가지고 들어오니 더할 나위없이 반가운 일이고, 대만도 본토 투자를 강력히 바라는 재계의 요청을 그런 식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선전의 상대가 홍콩이라면, 샤먼의 상대는 단연 대만이다. 전자의 고리가 일국양제라면, 그런 고리조차 없는 후자의 관계는 일단 '적국' 이다. 법이야 어떻든 현실에서는 '고객' 이다. 중국과 대만 교역량의 20%가 이 양안(兩岸)을 직행한다.

그 틈새에서 92년 중국의 해협회(海協會)와 대만의 해기회(海基會)라는 두 민간 단체가 겁도 없이 "중국은 하나다" 라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런데 그 하나가 어디인지는 각자의 해석에 맡기기로 했다.

언뜻 생각하면 어른들 소꿉장난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민간판 - 해적판(!) - 일국양제의 돌파구일지 모른다. 놀랍게도 朱시장은 그 얘기를 꺼냈고, 그것만 지키면 된다고 했다.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만 수락하면 독자적 군대까지 인정하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약속이다.

그 는 "강 하나 사이의 대만 동포 50만명이 매년 샤먼을 거쳐 본토 여행을 한다" 고 했다. 양안을 가른 것이 그의 눈에는 그저 하나의 강으로 비친 것일까.

양안에 통상.통항.통우(通郵)의 소삼통(小三通)이 허용된 연초부터 8월 현재까지 대만 기업인 단체가 진먼다오와 샤먼을 통해 본토에 상륙한 것이 20회를 넘었다. 어서 이를 전국 규모의 '대삼통' 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양안의 과제다.

무엇보다 자본의 논리가 거들고 있다. 외견상 정부의 완강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대만 기업인의 중국 투자는 계속 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그들은 더 많은 기회 확대를 바라고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정치 매듭을 경제와 관광이 푸는 셈이다. 통일은 '만만디' 이고, 장사는 빨리빨리(快溜溜地)인가.

홍콩과 대만은 중국의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와 냉전의 산물로서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닐 것이다. 명분과 기분이야 어떻든 그들은 중국의 '보물' 이 됐다. 홍콩이 개혁.개방 학습의 가정교사였다면, 앞으로 대만은 자본주의 실습에 숙달된 조교로 내세울 공산이 크다. 민족이란 그래야 하는데….

연방제니 연합제니 그 알량한 명분에 매달려 민족의 대계를 그르치는 청맹과니들에게 일국양제에 담긴 허허실실의 지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정운영 논설위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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