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1939~ ) '한 숟가락 흙 속에' 전문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걸!
머리카락을 낚아채고 창문을 흔들어대는 바람을 보면, 온갖 뿌리를 잡아당기고 풀나무 줄기를 밀어올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흙을 보면, 이 세상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무생물 같지가 않다. 그것들은 동식물과 생김새나 존재하는 방식만 다른 또 다른 생명체가 아닐까? 둔한 머리로야 알 길이 없지만 흙길을 걷는 발바닥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김기택<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