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한 숟가락 흙 속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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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현종(1939~ ) '한 숟가락 흙 속에' 전문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수십억마리 미생물이 밀어올리는

바로 그 힘이었다는걸!


머리카락을 낚아채고 창문을 흔들어대는 바람을 보면, 온갖 뿌리를 잡아당기고 풀나무 줄기를 밀어올리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흙을 보면, 이 세상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무생물 같지가 않다. 그것들은 동식물과 생김새나 존재하는 방식만 다른 또 다른 생명체가 아닐까? 둔한 머리로야 알 길이 없지만 흙길을 걷는 발바닥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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