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잘못된 '최돈웅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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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이 28일 당무회의에서 강릉 보궐선거에 최돈웅(崔燉雄)전 의원을 공천키로 한 것은 잘못이다.

崔전의원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회계책임자가 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崔전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고, 이로 인해 보궐선거가 실시되는 게 강릉의 사정이다.

***부정선거 책임이 있는 사람

선거부정으로 다시 선거를 치르는 마당에 그 부정선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후보로 재공천하는 것은 공당의 선택답지 않다. 법정신에도 맞지 않고 유권자를 무시한 처사다.

물론 한나라당은 법을 어기지는 않았다고 할지 모른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면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정치도의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공천이다.

崔전의원이 당선가능성 큰 후보일 수도 있다. 또 한나라당 입장에서 10.25 재보선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한석이 아쉽고,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의식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나라당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의 결정치고는 궁색하다. 해당지역의 여론조사에서 호각세를 보인 공천경쟁자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수용하기 어렵다. 더욱 개운치 않은 것은 崔전의원의 배경이다.

그는 이회창(李會昌)총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은 나이가 같은 데다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재력가이기도 한 崔전의원은 당에도 적지 않은 기여가 있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같은 점이 공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공천 결정을 李총재가 했다면 지도자로서는 부적절한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만일 주변에서 李총재의 심기를 살펴 그렇게 건의했다고 해도 이는 직언(直言)이 막히고 있다는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 李총재와 무관하게 당직자들이 결정했다면 그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쳐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지금 민주당 정권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며, 숱한 스캔들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지 깊이 새겨보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입만 열면 여권에 대해 "특정지역.특정학교 출신끼리의 나눠먹기 정권" 이라고 비난해왔다. 이같은 공격엔 李총재가 앞장서왔다. 한나라당이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제1당 확보에 성공한 것도 이같은 비판에 국민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정권도 잡기 전에 나눠먹기부터 시작했느냐는 의구심을 이번 강릉공천으로 주고 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가 정권을 잡은들 현 정권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라는 회의를 가져도 이는 한나라당 책임이다. 시중엔 "민주당이 지연(地緣)중심이라면 한나라당은 학연(學緣)" 이라는 비판이 전부터 돌고 있음을 한나라당과 李총재는 알아야 한다.

*** 민주당-지연, 한나라-학연

앞으로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르면 한나라당과 李총재 주변에는 崔전의원보다 훨씬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거기에 5년간의 야당생활에서 고난을 함께하고 깊은 정이 든 동지들도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들이 이제 "아무개는 공천 주고 나는 왜 안주느냐" 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결정과정에선 내부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제기를 깔아뭉개겠다는 생각이라면 이는 오만이다. "일개 지구당 공천인데 뭘…"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면 역시 착각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결정으로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게 될 것 같다. 당으로 하여금 이같은 결정을 하게 만든 崔전의원도 마찬가지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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