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뉴스] '사형폐지 특별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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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피살된 남편을 떠올리며

그녀는 연방 울먹입니다.

증오와 원한에 몸을 부르르

떨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증인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판사인 나의 말에 그녀는

통곡으로 요동치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일어나

피고인석을 노려봅니다.

"남편이 죽었던 것과 똑같이

저 짐승을 죽여주세요."

그녀가 내뱉은 말에

재판정은 으스스해집니다.

피고인석의 범인은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죽음을 예감하고 있을 그에게

나는 최후진술 기회를 줍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심하게 쿵덕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주저앉히며

그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니 세상에 남긴 말은

"나는 결백합니다"가 아니라

"살고 싶습니다"였습니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숙입니다.

준비해온 판결문의

첫 장을 넘기는데

몇 번이고 읽어봤던

글씨들이 일그러집니다.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라는 피고인의

애원이 귓전을 맴돌고

"살인마"라고 울부짖는

증인석과 방청석의 고함이

법정에서 메아리칩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무 자르듯 결정해야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판사입니까, 신입니까.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다음주 중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사형제를 폐지하고 대신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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