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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 스스로 정체성 분명히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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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사회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시민단체 역시 '압축형 고도성장'을 했다. 이제 시민단체의 사회적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월간 NEXT 11월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미래에 공헌할 집단 중 최상위로 삼성전자와 시민단체가 각각 13%와 12%의 지지를 받고 정치권은 최하위로 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 여러 집단 간의 갈등과 같이 시민단체 혹은 시민사회 단체들 간의 갈등은 우려할 정도다. 올해 들어서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집회 및 헌재 결정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시민단체 간의 충돌은 진보 정치세력과 보수 정치세력 간 갈등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하고 정부의 문제해결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 정치적.사회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중요성만큼 도덕성.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지난해 500여개의 시민단체가 정부와 산하 기관에서 400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아 세미나 등에 사용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당시의 보도는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전체를 호도하는 잘못된 것이었으나 시민단체들도 자신을 돌아보게 한 보도였다.

시민단체 전체를 하나로 묶어 정권의 홍위병 등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 역시 왜 그 같은 비판을 받는가 하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2004년 4월 현재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시민사회 단체는 5008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숫자는 미국의 20만여개, 일본의 6만여개 등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선 시민단체들에 대한 그 같은 비판이나 문제제기가 없다.

필자는 한국 사회가 시민(사회)단체를 매개로 한 갈등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보수 및 개혁을 자처하는 시민단체 스스로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시민운동은 국가와 시장의 논리에 대응하고 견제하는 제3의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항상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럴 때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시민운동을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한 독자적 영역으로 생각하고 지지를 보내게 될 것이다. 사회의 부패와 비도덕성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시민단체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둘째, 언론의 갈등 조정자 역할을 기대한다. 시민단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언론의 보도는 언론기관들 스스로가 권력기구 혹은 시장기구로 인식하는 데서 기인한다. 언론이 시민참여를 활성화해 사회자본을 형성하는 데 주력해 주어야 한다.

셋째,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은 직접적 지원이 아닌 간접적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민.관 합동의 중간 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식이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