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헬스] 헬리코박터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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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헬리코박터 세균은 3천년 전 미라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는 헬리코박터와 함께 살아온 것이다.

헬리코박터는 위산 중화 능력이 있어 험악한 인간의 위장 내 환경(살갗이 탈 정도로 강한 산성)을 잘 견뎌내고 생존해 왔다. 그런 그들이 최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위장 장애와 위염.위궤양은 물론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암인 위암까지 유발한다는 것이다.

지난주 미국의 의학잡지 NEJM은 일본 구레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 그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헬리코박터와 위암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혔다.

헬리코박터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장기적으로 관찰한 결과 감염자의 3%에서 위암이 발생한 반면 비감염자에게선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3%는 작은 숫자로 보일 수 있지만 의학논문에서 3%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내 성인의 30~80%가 헬리코박터 감염자란 사실을 감안할 때 모든 감염자에게 헬리코박터 약물치료를 권할 순 없는 일이다.

치료비 등 경제적 부담이 클 뿐더러 모든 헬리코박터가 다 위암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들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라에서 발견된 헬리코박터에선 악질적인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대의 헬리코박터는 인류의 위장 속에서 평화롭게 살았다.

문제가 되는 돌연변이는 비교적 최근 등장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악질적인 돌연변이가 느닷없이 생겨났을까.

전문가들은 아프리카 원숭이에게서 에이즈가 확산됐듯 교통 발달과 도시화를 원인으로 손꼽고 있다.

헬리코박터는 문명의 발달이 예기치 않은 질병을 불러일으킨 사례 중 하나다. 현대문명에 반발하는 세균의 반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전재석 교수 <노원을지병원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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