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1년 프로씨름 사라질 위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 차경만 LG증권 감독·이준희 신창건설 감독·김칠규 현대중공업 감독(왼쪽 둘째부터 시계방향으로) 등 3개 씨름단 감독과 연맹 관계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장충동 장충체육관 내 한국씨름연맹 사무실에 모여 비상대책회 의를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황제' 이만기에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까지. 지난 21년간 숱한 모래판 스타들을 배출해온 프로씨름이 사라질 판이다. 3개의 프로씨름단 가운데 LG투자증권 씨름단이 해체 운명을 맞으면서다. LG 씨름단은 회사 인수.합병 문제로 다음달 6일 팀을 공식 해체한다고 17일 밝혔다. LG가 해체되면 현대중공업과 신창건설 2개 씨름단만 남게 된다. 명색이 프로라는 이름으로 씨름대회를 꾸려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LG투자증권은 지난 5월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 그동안 우리금융지주의 인수절차를 밟아왔다. 당초 일정에 따르면 LG씨름단은 이달 말로 해체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 측이 "다음달 3일 열릴 천하장사씨름대회가 무산된다"는 한국씨름연맹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기를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허양도 LG씨름단 단장은 "사실상 씨름단을 운영해 온 LG그룹 측에서 인수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우리금융지주도 인수를 원하지 않는다. 모기업 경영권이 완전히 넘어가기 때문에 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씨름단 소속 선수와 코치진 19명도 하루아침에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다. 천하장사대회 폐막 다음날인 다음달 6일 구리 합숙소와 체육관인 LG챔피언스파크에서 대책 없이 짐을 싸야 할 입장이다. LG씨름단에는 백두급에 백승일(28).최홍만(24).김경수(32) 등 천하장사에 오른 거물들이 소속돼 있다. 차경만 LG감독은 "회사 측에서 이미 씨름단에 해체를 통보했다. 대회를 앞두고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지만 모두들 어수선한 상태"라고 말했다.

◆ 인수기업 물색 무산=LG씨름단은 그동안 건설업체 등 6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제3자 매각작업을 벌였으나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씨름연맹 이홍기 사무총장은 "연맹 재정이 부족해 과거처럼 상비군을 구성해 LG선수들을 받아들일 형편이 안 된다"면서 "주관사인 KBS도 2개팀만으로는 대회를 중계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설날장사대회(내년 2월)까지 인수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회 운영이 어렵다"고 밝혔다. 연맹 측은 17일 오후 장충체육관 내 연맹 사무실에서 비상회의를 열었으나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했다.

◆ 프로.아마 통합론도=씨름계에선 이 참에 프로와 아마추어로 나눠진 씨름계를 통합해 새판을 짜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한 씨름관계자는 "민속경기인 씨름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일본 스모처럼 각 체육관과 지역을 중심으로 대회를 꾸려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프로씨름은 1983년 '천하장사씨름대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96년에는 기업씨름단이 8개까지 늘어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최근 3년 동안 3개 팀만으로 운영돼 왔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