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소감] 채향옥씨 "아무 준비 없이 길위에 선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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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1면

밝은 햇살 속에 갇혀 온 몸이 캄캄하다. 한없이 오그라드는 육신 속으로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간다. 무섭다.

누구나 준비할 틈도 없이 길 위에 서는 것이리라. 빈손을 다잡아 보지만 긴장이 쉽게 이완되진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아득한 곳에 내던져져도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기를 나는 나에게 부탁한다.

목소리라도 들을까 전화를 했지만 당신은 고추밭에 나가고 안 계신다. 온 생애를 흙 속에 묻어버린 어머니. 두더지가 다니는 길을 훤히 꿰고 있을 만큼 이미 신통한 곳에 가 계시지만 당신은 세상에 시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게 시를 쓰게 하시는 어머니. 그 대지 속에 가득한 침묵을 끝내 내 몸 안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기를.

위안과 따뜻함 뒤에 배인 쓰라림과 쓸쓸함 또한 온전히 내 것으로 하기가 쉽지 않음을 나는 안다. 오늘은 나에게 다가온 순하고 모진 모든 인연들에 고개 숙이고 싶다.

모자란 글을 애써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돋보기를 꺼내 드는 횟수가 잦아지신 강형철 교수님, 그리고 마음의 빈자리를 열정으로 가득 채워 주시는 숭의여자대학의 은사님들께 감사드린다.

토요일 오후마다 숭의여자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서로의 상처를 겁 없이 꺼내놓고 안쓰러워하던 내 살붙이같은 동료들, 떨리는 목소리로 문학을 얘기하던 방송대학교의 '풀밭' 동인들,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바라다보는 모든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 채향옥 약력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숭의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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