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이야기꾼 - 무협 2.0 ⑦ 『노병귀환』 작가 남궁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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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자료 인심 덕에, 동료 작가들이 온갖 불경을 갖춘 ‘소림사 장경각’이라 일컫는 집필실을 가진 남궁훈 작가. [변선구 기자]

남궁훈(34). 어지간한 무협소설 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2005년 데뷔했지만 세 번째 작품 『검왕창천』을 3년째 붙들고 있을 정도로 과작이기 때문이다. 또 작품 분위기가 무협소설의 대표 유통 경로인 도서대여점에서 반길 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매니어는 나름 탄탄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을 하고도 2001년부터 무협사이트 ‘북풍표국’의 운영자를 맡고 있다. 별난 작가다. “돈은 전혀 되지 않는 일이었죠. 무협 매니어들이 모인 동아리 형태여서 오히려 운영비를 보태곤 했어요.”

특기사항 하나.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원·명·청 시대의 중국 지도를 먼저 만들었다. 무협을 읽다 보니 관련 정보가 부족한 탓에 말도 안 되는 작품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무협작가들에게 기초자료를 제공한 셈이다.

“관련 서적은 물론 인터넷을 뒤졌어요. 지명·특산물·명승지·배출 인물 등을 담은 일종의 인문지리서였죠. 사람들이 흔히 무협소설을 3류 통속소설로 여기는 것은 오로지 가공의 이야기에만 치중한 작가들의 책임이 커요. 시대와 장소를 묘사하려면 최소한 관직명, 군사편제 등 1차 자료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다가 아예 스스로 소설 쓰기에 뛰어들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게 있다고 여겨서였다. “젊고 똑똑하고 잘 생기고 천하무적인 사람만 주인공을 하라는 법은 없지 싶었어요.”

그렇게 나온 첫 작품이 『노병귀환』이다. 주인공 장철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황실의 권력다툼, 강호의 은원관계가 뒤얽힌다. 창작무협에선 보기 힘든 치밀한 구성이다. 한데 주인공이 48세, 미남도 아니고 제법 강하긴 하지만 천하제일은 아닌 군인 출신이다. 일종의 ‘반(反)무협’이다.

“작품을 쓸 때 오륙도·사오정 하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중년들이 그렇게 뭉뚱그려지는 게 마땅한가 하는 불만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천명(天命)을 찾는 과정을 그리려고 했죠.”

그러니 자연 작가의 메시지가 작품 곳곳에 담겼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다.

“땅 한 뼘을 위해 칼을 뽑지 말고, 동전 한 닢을 위해 병사를 모으지 말라. 백만 평 대지보다 사람 한 목숨이 귀한 줄 알고, 백만 닢의 금화보다 눈물 한 방울이 무거운 줄 알라.”

“간파세사(看破世事)라, 이치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얻어야 할 큰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 세상에 물어보도록 하여라.”

“사람은 평생 악할 수도 평생 선할 수도 없소…. 세상 누구라도 사람은 살 가치가 있소.”

묵직한 대신 단숨에 읽히는 흡인력은 떨어진다. 하지만 명나라 초기 역사를 녹여낸 구성이 정교하고, 주인공의 캐릭터가 독특해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한국대중문학작가회의 금강 회장은 그를 ‘남궁각주’라 부른다. 특유의 꼼꼼함, 혹은 엄격함을 작품에 녹여내는 솜씨에 대한 칭찬이지만 막상 작가는 이를 경계한다.“팩트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흐름을 막기 때문에 소설에 독이 될 수도 있어서요….”

스스로 오거서(五車書)를 읽었다 자부하는 남궁 작가는 지금도 금융 관련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회사에 다닌다. 하지만 무협소설은 계속 쓸 생각이라 했다. 이유를 물었다.

“처음엔 책이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쓰고 보니 보람도 있고 스스로 재미도 있어서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한 계속 쓸 겁니다.”

기존의 창작무협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향후 작품이 기다려지는 답이었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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