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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殷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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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믿고(怙) 의지한다(恃)는 뜻의 호시怙恃)는 부모를 가리킨다. ‘아버지가 없으면 누구를 믿으며(無父何怙) 어머니가 없으면 누구를 의지하겠는가(無母何恃).’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부모는 이처럼 믿고 의지하는 대상이다. 나의 존재를 있게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없으면 잎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뿌리가 잘리면 후대는 없고(斷根絶種), 뿌리가 깊으면 잎사귀가 무성한 법이다(根深葉茂).

나라의 경우 뿌리는 역사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 세대의 경우 근본(根本)을 잊게 생겼다. ‘2009년 개정 고교 교과과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한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뀐다. 고교 3년간 국사(國史)를 배우지 않아도 졸업이 가능해진다. 그렇잖아도 암기할 분량이 많아 수능시험에서 외면당하는 국사가 이젠 아예 존폐(存廢)의 기로에 서게 됐다.

역사 알기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경에 ‘은감(殷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은나라 거울’이란 뜻이다. 은 이전의 하(夏)나라가 어떻게 망했는가를 은나라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은나라의 거울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하후의 시대에 있다(殷鑑不遠 在夏后之世).’ 걸왕(桀王)의 폭정으로 망한 하나라 역사를 거울로 삼아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다짐이다.

당(唐) 태종(太宗) 또한 ‘옛것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다(以古爲鏡 可知興替)’며 역사를 거울로 삼아 정관(貞觀)의 치(治)로 불리는 태평성세(太平盛世)를 일궜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선인은 ‘미래를 알려면 과거부터 살피라(欲知來者察往)’고 하지 않았던가. 한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앞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一葉落知天下秋)’고 한다. 국사 과목을 선택제로 결정한 교과 개정이 얼마나 문제가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사뿐 아니라 국·영·수 등 다른 과목 모두 선택제로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천안함 46용사를 기리며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지 않는데 어떻게 천안함 용사를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국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 돼야 마땅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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