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철도 4형제 "우리 가족이면 열차 달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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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가족들만으로도 열차를 움직이고 승객들을 받는 등 철도사업을 할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죠. "

18일은 철도의 날. 1899년 이날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33㎞가 개통됐다.

철도청 광주차량사무소 검수계장으로 기관차 정비를 하는 이정수(李正洙.42)씨네 4형제는 철도의 날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5남매 중 여동생 한 명만 빼곤 모두 철마(鐵馬)와 함께 사는 철도공무원 가족이기 때문이다.

"집은 가난한데 공부는 하고 싶고, 빨리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학비가 필요 없고 취직이 보장되는 철도고를 갔죠. "

李씨 형제의 고향은 지금도 철도가 닿지 않는 전남 장흥군 장흥읍. 철도와의 인연은 첫째 정수씨가 1978년 2월 철도고 졸업 후 철도청에 입사하며 시작됐다.

7년 뒤엔 셋째 충수(忠洙.35)씨가 맏형의 권유로 철도고에 입학했다. 그는 85년 역무원으로 출발, 객차를 떼고 붙이는 수송원을 거쳐 역장이 됐다. 목포역 부근의 임성리역을 총괄하고 있다.

이어 둘째 안수(安洙.38.목포 기관차승무사무소)씨가 91년 공채시험을 통해 기관사가 됐다. 고교를 나와 당구장을 하는 등 이것저것 하다 형님 '지시' 로 철도 시험을 봤다는 게 그의 회고다.

1년여 뒤 막내 용수(龍洙.32.서광주역 역무원)씨가 대학을 중퇴하고 철도 가족에 합류했다. 군복무 후 복학을 앞두고 맏형이 시험 원서를 대신 제출할 정도로 강력하게 권유했다고 한다.

막내 용수씨는 차장 시험에 합격해 연말이면 열차를 타고 승객들을 돌보게 된다. 네 형제가 정비.운전.역무.차장 등 각기 다른 철도 일을 하게 되는 셈이다.

맏형 정수씨는 "명절 때도 모두 모이지 못한다" 며 "휴가를 맞춰 1년에 단 한번 아버지 제삿날에 전부 모인다" 고 말했다.

둘째 안수씨는 "우리가 철도청 돈을 다 가져간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많다" 며 활짝 웃었다.

광주=이해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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