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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이스라엘·미국 삼각관계 파헤친 책들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에 대해 CNN 등 TV화면에 보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 다.

뉴욕에서만 1만여명의 희생자를 낸 이 참사에 보내는 저들의 환호는 어떻게 된 것인가. 광적(狂的)이라고 할 정도의 반미(反美)감정,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번 사태에 대한 포괄적인 성찰로 유효한 책이 상당수 있지만, 살아있는 세계 최고의 중동학 대가인 버나드 루이스의 대작 『중동의 역사』(까치, 1998)는 그 머나먼 뿌리를 보여준다.

중동 고대문화에서 걸프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문화적 맥락으로 살피고 있는 이 책은 이슬람 세계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와 겪게 되는 갈등과 문화적 충격을 설명해 준다.

또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지음, 김영사, 1997)은 잘 알려진 바대로 이슬람과 아시아의 용틀임이 서구중심의 세계질서를 강타할 것이라면서, 서구와 비서구문명 간의 격돌을 예언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며, 냉전이론의 변형 혹은 새로운 백인우월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사실 최근의 중동문제는 오히려 가까운 과거에서 뿌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중동문제의 1차적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유대인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프랑스의 지성 장 폴 샤르트르의 『아랍과 이스라엘』(시공사, 1991)은 그들의 역사적 갈등을 잘 보여준다. 내용이 다소 과거에 치중돼 있긴 하지만, 같은 사안을 두 민족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면서 중동문제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준다.

제프리 리건의 『세계의 화약고 중동』(크리스찬 월드, 1992)도 아랍민족주의의 태동과 이스라엘 건국, 이 과정에서의 아랍과의 갈등과 전쟁, 이스라엘의 입장 등에 관해 양측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간단히 서술한 정보수첩같은 책이다.

자, 그럼 여기에 미국이 왜 끼어드는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미국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외교관 출신의 저자가 생생한 자료와 쉬운 필체로 쓴 『세계사의 주역 유태인』(박재선 지음, 모아드림, 1999)을 보면 그 실마리가 풀린다. 미국과 유대인들의 특수관계나 미국을 움직인 유대인 지도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독립 후에도 미국은 거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이에 따라 미국과 아랍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특히 네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아랍측이 고토(故土)회복에 실패하고, 1967년 소위 6일 전쟁에서는 기존의 영토까지 점령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경험하자 이런 반감은 더욱 커졌다.

당시 아랍측이 추가로 빼앗긴 땅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즉각 철수를 결의했으나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을 향한 본격적인 테러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은 이때쯤부터다. 또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의해 '땅과 평화의 교환' 이라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 점령지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을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합의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자 최근 유혈충돌이 격화돼 왔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미국간의 삼각관계를 비교적 객관적이면서 깊이있게 파헤치고 있는 고전과도 같은 책이 노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이후, 2001년)이다.

중동 원유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유럽에 대한 견제 등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원유생산지역 점령을 위한 간섭세력 저지를 위해 미국을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의 계산이 얽힌 미국과 이스라엘의 밀월관계에 대해 폭로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자기파괴성과 강경파의 문제를 지적하는 등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국내 저자의 책들로는 한국중동정치학의 태두인 유정열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최근작 『현대중동정치』(박영사, 1997)나 중앙대 총장을 역임한 하경근 교수의 『현대중동정치』(박영사), 경희대 사학과 유공조 교수의 『중동분쟁사』(서원, 1994) 등이 읽어볼 만하다.

또 『걸프전쟁과 아랍민족운동』(눈, 1991)은 걸프전을 미국의 입장이 아닌 제3세계의 입장에서 보고자 하는 이병승 등 진보적 소장연구자들의 소논문들이 실려 있다.

다만 이 책들은 서술방식이 다소 딱딱하고 중동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배제돼 있어 일반인들이 읽기엔 어려운 편이다.

한편 이번 미국의 테러사건에 대해선 아랍과 관련된 지엽적인 갈등이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있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촘스키와 함께 미국 내의 행동하는 반미 지식인인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당대, 2001)은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보여지는 미국의 이중적 속성을 보여주며, 78년에 나온 에드워드 사이드의 기념비적 저서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2000)은 이른바 문화제국주의에 관한 고전 같은 책이다.

이렇게 과거엔 군사.경제력, 이젠 맥도널드.나이키.디즈니 등을 앞세운 미국의 제3세계 '침공' 에 대한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유명 언론인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당면한 위험들』(Present Dangers)에서 "오늘날 국제환경이 비교적 양호한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 덕택" 이라는 전제 하에 냉전 종식 이후에도 아랍 등 잠재적 위험세력에 대해 유엔이나 우방들과 협력할 필요도 없이 미국의 독자적인 힘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 내에선 보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어 왔다.

이는 미 부시 정권의 오만한 단독주의 외교정책으로 나타났으며, 그 결과가 이번 사태였다는 시각도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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