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 악용 '데이트 폭력' 이 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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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친구 소개로 만난 남자 친구 박모(24.회사원)씨와 3년간 사귀어 온 김모(23.간호사)씨. 김씨는 지난 달 박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1시간 늦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박씨가 김씨를 공터로 끌고가 '엎드려 뻗쳐' 자세를 하게 한 뒤 30㎝ 길이의 굵은 몽둥이로 김씨의 엉덩이를 30여 차례 때린 것. 김씨는 "평소에도 약속 시간에 자주 늦었으니 반성하라" 는 박씨에게 "잘못했다" 고 용서를 빌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올해 4월 같은 과 선배 최모(22)씨와 캠퍼스 커플이 된 대학생 이모(21)씨. 최씨와 사귄지 2개월 정도가 지난 뒤 최씨의 집에 놀러 갔다가 "한 번만 관계를 갖자" 는 요구를 받았다.

이씨는 이를 거부했으나 최씨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최씨는 "사랑해서 한 일이니 용서해 달라" 며 이씨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한달 전 갑자기 이씨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위 두 사례는 최근 온라인 상에 문을 연 데이트폭력상담소(http://www.happydate.net)에 접수된 것들. 지난 7월 오픈한 이 곳의 상담게시판에서는 두달 사이 1백건이 넘는 상담이 이뤄졌다.

젊은이들 사이에 이성 교제가 보편화하면서 '데이트 폭력(Dating violence)' 이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데이트 폭력은 미국 등에선 이미 1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가 됐지만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 무엇이 '데이트 폭력' 인가=데이트 폭력이 데이트 '성폭력'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구타하는 행위 등도 모두 데이트 폭력에 포함된다. 이번에 온라인 데이트폭력상담소의 문을 연 삼육대학교 서경현 교수는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데이트 상대를 위협하거나 손찌검을 하는 등의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의외로 빈번하다" 고 말했다.

◇ 대학생 3명 중 1명 데이트 폭력 행사=지난 6월 서교수가 대한여성건강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 대학생의 42.5%, 여자 대학생의 31.2%가 한 번이라도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남자 대학생의 5.2%가 폭력을 사용해 성행위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등학생의 경우에도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남녀 각각 23.4%와 41.1%였으며, 강제로 성행위를 시도한 경우는 남학생의 4.7%였다.

또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접수된 1천2백89건의 상담 가운데 10.7%인 1백8건이 데이트 중에 일어난 성폭력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조중신 상담실장은 "데이트 폭력의 경우 호감을 가진 이성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피해자가 상대에게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어 피해가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려면=서교수는 "데이트를 하면서 폭력을 쓰는 사람은 결혼 후에도 가정에서 폭력을 쓰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폭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고 말했다. 또 "데이트 중에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빨리 헤어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 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트폭력상담소의 정구철 상담원은 "데이트 성폭력의 경우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

▶이런사람…데이트 폭력가능성 크다

1.질투심과 소유욕이 강하다.

2.자신의 잘못을 두고 타인을 원망한다.

3.욱하는 성질이 있고 예민하다.

4.학대당한 경험이 있다.

5.스트레스를 받으면 술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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