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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때 큰돈 벌어” 골드먼삭스 e-메일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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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골드먼삭스 경영진이 2007년 미국 주택의 가격 급락 때 “큰돈을 벌었다”고 자화자찬한 e-메일이 공개됐다. 이는 그동안 골드먼삭스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상품 때문에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최근 골드먼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제소됐다. 고객에겐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을 사라고 하면서 집값 하락에 베팅하는 헤지펀드가 만든 상품이란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골드먼삭스 경영진은 “우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며 SEC의 제소가 부당하다고 항변해 왔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e-메일은 이 같은 골드먼삭스의 항변을 무색하게 한다.

24일(현지시간) AP·AFP통신에 따르면 골드먼삭스의 최고경영자(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2007년 11월 18일 작성한 e-메일에서 “우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며 “다만 쇼트(매도) 포지션 덕에 잃은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만족해했다. 쇼트 포지션이란 집이나 주식 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미리 팔아 두는 투자기법을 말한다.

SEC에 의해 사기 혐의로 제소당한 파브리스 투르 부사장은 한술 더 뜬다. 그는 한 여성에게 보낸 e-메일에서 “내가 한 달 전만 해도 하나에 100달러였으나 지금은 93달러로 떨어진 상품을 거래하고 있다”며 “이런 거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면 (고객이 입은) 손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상품이 “마치 자신을 발명한 사람을 해친 프랑켄슈타인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상품을 고객에게 계속 팔았다.

2007년 10월 신용평가회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상품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추자 이를 반기는 e-메일도 있다. 골드먼삭스의 임원 도널드 멀린은 이날 동료 임원 마이클 스벤슨에게 “(신용평가사 덕에) 우리는 대박이 터질 거야”라고 자랑했다. 비슷한 시기 최고재무관리자(CFO) 데이비드 비니어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데 베팅해) 하루에 5000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밝혔다. 골드먼삭스 경영진의 e-메일과 25건의 내부 문건은 칼 레빈 미국 상원의원이 공개한 것이다.

레빈은 “당시 e-메일은 골드먼삭스가 모기지 시장에서 투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레빈이 의장인 미국 상원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설조사위원회는 27일 골드먼삭스 경영진을 불러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블랭크페인을 비롯한 골드먼삭스 경영진은 소액주주로부터도 두 건의 소송을 당했다. 골드먼삭스 소액주주는 지난 22일 블랭크페인 CEO와 골드먼삭스 전 이사진이 부채담보부증권(CDO) 매매와 관련,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뉴욕주 대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소송은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영진을 상대로 몇몇 주주가 전체 주주를 대표해 과실 규명을 요구하는 대표소송제 형식으로 제기됐다. 법조계에선 SEC가 골드먼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한 이후 집단소송을 비롯한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상품. 신용등급이 높은 ‘프라임(Prime)’급에 못 미친다는 의미에서 ‘서브 프라임(Subprime)’이란 이름이 붙었다. 미국 은행들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이 대출을 마구잡이로 했는데, 2007년 이후 집값이 하락하면서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다. 골드먼삭스가 사기 혐의로 제소당한 것도 이 대출과 관련된 파생상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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