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사 자료와 김구 암살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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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역사는 곧 자료다. 역사는 당시의 유.무형 자료를 통해 해석된다. 올바른 역사관 정립도 바로 역사 자료의 체계적 수집에서 출발한다.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미군방첩대(CIC)자료는 민족지도자 김구(金九)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CIC 요원이었으며, 해방 후 남로당 핵심 간부였던 이강국(북한 초대 외무성 부상)과 임화(작가)도 CIC 스파이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자료에 대한 면밀한 연구검토 작업에 이어 김구 암살의 배후와 해방 정국에서 미국의 역할 등 우리 현대사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현대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인 만큼 지금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이들 자료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계획적인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자료를 공개한 국사편찬위원회는 물론 전쟁기념사업회.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부기록보존소 등에서도 유사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교환되지 않거나 중복 수집되는 등 각 기관의 공조와 계획적인 수집이 이뤄지지 않아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을 이미 오래 전부터 받아왔다. 실제로 외국의 기관에선 같은 자료를 여러 연구기관이 반복해 복사해 가는 것을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

예산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기관별로 할당된 예산 중 인건비가 대부분이며 자료 수집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오래 전부터 많은 예산을 투입해 수십명의 연구 인력으로 미 군정 자료를 계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국사편찬위원회가 예산 지원을 받아 미국.일본에서 이제 막 자료 수집을 시작한 단계다.

역사의식의 부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70, 80년대에 생산된 수많은 민주화 자료가 소실되고 있으며 정부의 중요 자료들이 정권교체 때 사유화되거나, 심지어 중요 사안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여주는 회의록조차 작성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제라도 자료의 생산은 물론 국내외 자료 수집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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