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위해 연기금 적극 활용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4일(한국시간 15일) "국민이 KT.포철(포스코).국민은행같이 심리적으로 국민 기업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자본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게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기금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남미 3개국 순방의 첫 방문국인 아르헨티나 현지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머니게임을 하기 위한 투기성 자본이 많이 들어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회사를 찝쩍거려 보기도 하지만 경영이 탄탄한 조직은 절대로 M&A 당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KT와 포스코 등 한국 대표기업을 예로 들며 "당분간 증권시장에서도 주식 투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한국도 충분한 자본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은 매년 15조원 이상씩 쌓여가고 2012년 지급 때까지는 해마다 쌓여갈 것"이라며 "지금 여유자금이 100조원 정도 되지만 이 국민자본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또 "전 세계는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고, 외국 기업은 한국에 투자하고 있지만 한국은 꽁꽁 묶여 있어 좀 풀려야 한다"면서 "수년 내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은 전날 미국 LA 동포 간담회에서도 "(연기금을) 정부가 쓰자는 게 아니고, 우선 주식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걸 풀지 않으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었다.

이 부총리는 이날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의 답변에서 열린우리당 신중식 의원의 질의에 대해 "연기금 등 민간자본들이 좀더 다양하게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길을 터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 대부분은 재무적 투자자로 국내 기업 경영에 직접적 위험요소는 아니지만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을 육성하고 투자신탁회사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기업의 적대적 M&A 노출 가능성에 대해 "실효성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검토 중이며 연내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현재 우리의 방어 장치는) 유럽보다 약하지만 미국보다는 강하다"고 덧붙였다.

최훈.김종윤 기자

[뉴스 분석]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법안 국회 통과 위한 명분 만들기

노무현 대통령과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연기금의 주식 투자와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연계시켜 언급한 것은 국회에 상정된 연기금의 주식 투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연기금의 주식 투자 목적에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슬그머니 추가한 셈이다. 정부는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반대로 국회 통과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한국형 뉴딜정책을 위해 연기금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올 6월 말 현재 국민연금 등이 쓸 수 있는 기금은 136조원 규모에 이른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수년 내 투자자금이 수백조원으로 늘어날 상황이다. 이 자금을 '백기사'로 활용해 증시를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국내 우량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기금이 대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지분을 갖게 되면 기업 경영권이 정부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 정부가 연기금을 증시 부양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연기금의 주식 투자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 부총리가 실효성 있는 경영권 방어 장치를 연내에 구체적으로 내놓겠다고 밝힌 대목도 관심거리다.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 의결권 제도' '황금주'(주요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등을 제안해 왔다.

하지만 이들 방안은 상법 등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재계는 당장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부터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