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벌 밉다고 알짜 재산 외국에 넘길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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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국내 기업의 손발을 묶어 둬선 안 된다." 어제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투기성 외국자본의 공세와 급격한 철수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요구했다. 그동안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방관하던 인수.합병 문제에서의 국내 기업 역차별 문제점들을 국회가 뒤늦게나마 인식한 것은 다행이다.

현실적으로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위협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SK는 소버린의 공세 앞에서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고 삼성전자 등 간판급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현대자동차 등 10대 기업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평균 44%를 넘는다. 여기서는 외국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경영권 위협이 가능하며 주식을 팔아 단기 차익을 챙길 수도 있다. 이미 외국인이 대주주가 된 상장기업은 30개를 웃돈다.

물론 외국자본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M&A도 잘만 활용하면 경영효율과 투명성이 커져 기업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문어발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방법은 봉쇄해 놓고 외국 자본에는 그 길을 열어 주는 역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외국 기업을 차별해선 안 되듯이 국내 기업을 역차별 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런 제도적 맹점 때문에 국내 우량기업이 헐값에 공중 분해되는 일이 생긴다면 엄청난 국력 손실이다. 투기성 자본의 급격한 철수에 대한 방어막이 없을 경우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견제는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다. 경영권 방어를 못 하게 하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은 폐지돼야 한다. 전경련은 출자총액 제한은 상위 5대 그룹에만 적용하고,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2년 유예 뒤 단계적으로 20%로 낮추자는 안을 내놓았다. 국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이런 대안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 공정위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대기업이 밉다고 나라의 알짜 재산을 넘길 수 없다.